[노트북 단상] 테러 경각심과 우리사회의 병폐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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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사회부 동부경남울산본부 차장

‘쾅!’ 8월 19일 오후 3시 울산공항 대합실에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사람이 죽고 다쳤다.” 신고를 받은 경찰,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나섰다. 긴박한 상황을 인지한 국정원과 유관기관이 대테러합동조사에 착수했다.

공항 밖에선 드론 여러 대가 공중을 활보하며 패닉에 빠진 시민들에게 독가스를 뿌렸다. 울산화학재난합동방제센터 탐지 결과 독일 나치가 유대인 학살에 사용한 살인 도구, ‘염소가스’였다. 특수 제독차량이 투입됐고, 경찰은 정부 비상령 중 최고 단계인 갑호비상을 건의했다. 한쪽에선 테러범들이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당국의 위기협상팀이 고심 끝에 협상 결렬을 결심한 순간,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치며 테러범을 일거에 진압했다. 오후 3시 45분 상황 종료.

스릴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련의 장면은 실제 상황을 가정한 경찰청 주관 ‘제1회 국내 테러사건대책본부 훈련’에서 연출한 모습이다. 테러범을 잡기 위해 헬기에서 패스트로프로 하강하는 경찰특공대도 멋지지만, 훈련의 요체는 국가 핵심 기관들이 만들어내는 ‘협업 시스템’에 있다. 경찰과 소방, 국정원 등 11개 기관 367명이 각자 역할에 충실하며 빈틈없는 대비 태세를 구축하는 것이다.

경찰이 울산의 한 작은 공항을 낙점해 대테러훈련의 새 이정표를 세운 건 우연이 아니다. 훈련을 자청한 울산 경찰의 적극적 의지가 주효했는데, 무엇보다 원전과 공단 등 국가 중요시설이 즐비해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울산의 장소성이 깊이 고려됐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과연 테러로부터 안전한가.’ 이번 훈련을 보고 자연스레 떠오른 물음이다. 국가정보원이 올해 4월 발간한 ‘2023년 테러정세와 2024년 전망’에 따르면 국내에서 테러단체가 개입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테러단체 지원 사례가 지속 적발됐다.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마냥 안심할 처지도 아니라는 얘기다.

2023년 울산의 한 복지시설에서 발생한 대만발 독극물 의심 소포 사건은 전국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으며 테러 공포에 취약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춰냈다. 전국적으로 관공서나 학교를 대상으로 테러 예고 메일이 발견돼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변에선 ‘에이 설마…’ ‘그러면 그렇지’ 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테러는 이런 안이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일상의 평온을 파괴하고 공포와 불안을 심는다. 최근 독일 축제현장에서 3명의 목숨을 앗아간 극단주의 이슬람세력의 묻지마 테러가 대표적이다. 미국 9·11의 악몽이 어김없이 생각나는 요즘 그저 남의 나라 얘기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경찰 대테러 훈련에서 규정한 ‘가상의 적’, 그 실체는 무엇일까. 남쪽으로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는 북한일까. 극단주의 무장단체일까. 혹시, 우리 내부의 편견과 혐오, 차별로 점철된 고질적 병폐가 있는 건 아닐까. 편가르기식 진영 논리는 각종 정치 테러로 이어지며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빠른 속도로 악화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어떤가. 젠더 갈등, 노사 갈등, 최근의 의정 갈등까지…. 갈등공화국의 어두운 그림자는 곳곳에 깔려 있다. 무더위에 열린 대테러훈련이 잠자던 경각심을 깨우고 우리 사회 양극화를 돌아보는 거울이 된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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