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의 집피지기] 노인과 바다, 그리고 아파트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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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부동산팀 기자

도심에는 청년보다 노인의 비중이 훨씬 높고,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건 바다 뿐이라고 해서 부산에 붙은 별칭이 ‘노인과 바다’다. 요즘엔 노인과 바다 뒤에 ‘아파트’를 붙이기도 한다. 고개를 들면 다닥다닥 붙은 고층 아파트 단지만 보인다고 해서다.

지난달 29일 부산시는 ‘민선 8기 부산 고용지표 크게 개선! 일자리의 질도 함께 올라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부산의 15세 이상 고용률이 2002년 월드컵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는 거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고용률 지표는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다. 이례적으로 느낌표까지 붙인 보도자료와는 달리, 지역에 남은 청년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YK스틸의 당진 이전은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들에게 박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2011년 시가 LH의 택지개발계획 변경을 승인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보금자리를 떠나는 판국에 그나마 남아있는 일자리마저 밀어낸 건 고작 아파트였다.

지난해 5월 폐점한 연산동 홈플러스 외벽에는 ‘굿 뉴스’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마트 건물이 1군 건설사가 짓는 고층 아파트로 바뀐다는 게 굿 뉴스라는 거다. 남천동 메가마트 자리에는 평당 50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질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트가 사라지면 수백 명의 밥벌이도 함께 없어진다. 지난 5년간 문을 닫은 부산지역 대형마트는 6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그 자리엔 어김없이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추진된다. 재빠르게 손을 털려는 유통업체나 부동산 개발자들이야 이런 굿 뉴스에 구미가 당길지 모르겠으나, 대다수 시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밀려나고, 오션뷰의 초고층 아파트만 빽빽이 들어서는 도시에 장밋빛 미래는 없다. 성장하는 도시에는 아파트 대신 창업 센터나 연구 단지,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이 들어선다. 물론 극단적인 수도권 중심체제에서 기업들이 지방을 외면하는 걸 오롯이 지자체 탓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이 가능한 용도지역이면 도장부터 찍고 보는 지금의 행정으로는 변화의 가능성조차 제시하기 어렵다. 이기대의 길목에서 사업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인 고층 아파트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공공재적 가치를 보호할 고민이나 노력 없이 행정기관이 뒷짐만 진다면 이기대는 물론 도시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개발업자들에게 잘못된 선례를 남겨선 안된다. 초고층 아파트에 남겨진 노인들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부산의 미래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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