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예술과 과학의 도시' 발렌시아와 북항
발렌시아는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하지만 쉽게 찾는 곳은 아니다. 우선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와 달리 국내 직항편이 없으며, 두 도시와의 거리도 각각 350㎞씩 떨어져 있다. 관광지로 주목받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와도 500㎞ 거리에 있어서 특별한 방문 목적이 없으면 여행 일정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도시의 콘텐츠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가끔 발렌시아 전통음식인 파에야가 언급되는 정도다.
필자는 지난달 발렌시아를 방문했다. ‘예술과 과학의 도시(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 복합문화단지 내에 있는 오페라극장 ‘레이나 소피아 예술궁전’에서 공연된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 일정에 맞춰서이다.
신미래주의 건축가 중 한 사람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예술과 과학의 도시’는 1998년 개장됐다. 한 해 앞서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거의 비슷한 시기이다. 부지는 1957년 발렌시아 대홍수로 강 방향이 바뀐 후 정원이 된 투리아강의 수로 끝자락에 위치해 있고, 규모는 길이 2㎞, 35만㎡에 이른다. 단지 내에는 2개의 다리와 아이맥스 영화관인 에미스페릭, 펠리페 왕자 과학박물관, 식물원과 야외 조각공원으로 쓰이는 움브라클, 유럽 최대 규모의 수족관인 오세아노그라픽, 레이나 소피아 예술궁전 그리고 컨벤션센터로 쓰이는 아고라까지 6개의 건축물이 있다.
발렌시아는 그동안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 수도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 밀려 있었으나 ‘예술과 과학의 도시’가 완공되면서 빌바오 구겐하임의 성공에 버금갈 만큼 주목받는 도시가 되었다. 공주와 왕자 이름으로 된 과학관과 오페라극장이 다소 생경할 수 있는데, 레이나 소피아는 스페인의 전 국왕 후앙 카를로스 1세의 아내이자 2014년 왕위를 물려받은 현 국왕 펠리페 6세의 어머니이다.
레이나 소피아 예술궁전은 투구 형태의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인상적이었다. 극장 안팎을 이어 주는 완충공간 격인 로비와 라운지는 자연 채광이 들어와 안락했다. 객석은 평일인데도 거의 만석이었다. 발렌시아 현지인들의 오페라를 즐기는 문화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오페라가 끝날 무렵엔 펠리페 왕자 과학박물관을 다녀오는지 자녀가 있는 가족이 눈에 많이 띄었다.
돌이켜 보니 과학과 예술 그리고 교육이 어우러진 공간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싶었고, 단지를 가득 메운 아이들의 모습에서 건강한 미래가 엿보였다. 이미 20여 년 전에 개장한 시설이라는 게 새삼 놀라웠다. 북항이 오버랩됐다. 엑스포 유치는 멈췄지만, 북항 개발도 예술과 과학이 어우러진 멋진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랐다.
아트컨시어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