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 칼럼] 22대 국회의원의 십계명
논설위원
4·10 총선 뒤 변화된 정치 상황 반영
대통령 십계명 등 사항 공개적 요구
상대 의도 있다 해도 성찰 계기 활용
22대 의원 당선자들도 고려해 볼 만
공약·다짐 등 정리한 자기규정 필요
임기 시작 스스로 다잡는 계기될 것
지난 4·10 총선으로 정치권 제 세력 간 위상이 결정된 이후 관심은 자연스레 제22대 국회로 집중된다. 국민들은 새롭게 형성된 정치 구도가 잘 작동할는지 걱정스러운데 정치권 제 세력 간에는 벌써 경쟁과 견제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현 정부와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조국혁신당의 약진으로 22대 국회는 21대보다 정치적 풍랑과 격동이 더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22대 국회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얘기인데 국민들이 또 정치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이른바 ‘십계명’을 촉구하고 이에 반박해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대변인 출신의 김연주 시사평론가가 조국 대표에게 ‘오계명’을 제시하면서 서로 십계명 또는 오계명 형식의 요구 사항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조국 대표가 제시한 십계명은 몇 가지 특검법의 수용과 민생 회복 및 과학기술 예산 복원, 야당에 대한 표적수사 중단 등 정치적 사안부터 대통령의 음주 자제, 극우 유튜브방송 시청 중단 등 사적인 것까지 다양한 요구 사항을 담았다.
이에 반격한 김연주 시사평론가의 오계명은 2심 재판부의 징역 2년 실형 선고에 대한 조국 대표의 입장과 대국민 사과, 대통령과의 만남 조르기 금지와 같은 정치적 성격부터 SNS 과다 사용 금지, 컴퓨터 스킬을 이용한 특정 목적 문서의 작성 자제, 웅동학원의 사회환원 약속 실천을 담았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앞둔 조국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을 꼬집은 것이다.
윤 대통령을 향한 십계명이나 조국 대표에 대한 오계명이나 모두 총선으로 변화된 정치 구도를 투영한 것으로 일견 경청할 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상대를 몰아세우려는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인다고 해도 스스로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의정 활동의 꿈에 부풀어 있을 22대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십계명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십계명으로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거창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닐 테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다양하게 분출된 민의의 최대공약수가 그 바탕이다. 이런 관점에서 22대 국회의원의 십계명을 고려해 본다면 당연한 사항을 조금 정제해서 말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참고할 만한 십계명은 이미 몇 가지가 나와 있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가나안농군학교장 김평일 장로가 제시한 십계명이 있는데 주요 내용은 이렇다. 윤리, 도덕, 가정생활의 모든 일에 모범이 되고 인성이 바로 된 사람,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 겸손하고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 정치 입문 당시 초심의 자세로 일하는 사람을 열거하면서 인성과 초심을 우선하여 강조했다. 이어 자존심을 버리고 일꾼의 자세로 항상 연구·노력하는 사람, 100년이 지난 후에도 잘했다는 칭찬을 받는 사람 등 의정 활동의 자세까지 성직자다운 내용을 담았다.
정치권에서도 스스로 부과한 십계명의 사례가 있다. 2016년 1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내 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된 뉴파티위원회가 표방한 ‘거부 십계명’이 그것이다.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막말 거부,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정치방언 거부, 보좌진이나 공무원 막 대하기 등 정치갑질 거부, 선거 때만 얼굴 비추고 끝나면 외면하는 속물정치 거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과만 밥 먹고 소통하는 행위 거부, 패권정치와 진영논리 거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정치인답게 의정 활동에 기반한 십계명으로, 지금 그대로 원용하더라도 괜찮은 내용이다. 당시 십계명에 동참한 의원들이 이를 얼마나 명심하고 잘 지켰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십계명을 추출해 명시적으로 밝히고 이를 의정 활동의 나침반으로 삼겠다고 다짐한 점은 평가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들도 지금쯤 스스로 십계명을 고려해 볼 때다. 선거 기간 본인이 내뱉었던 수많은 공약과 다짐, 선언을 정리해 매일 되새기면서 스스로 각인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지난 총선 기간 밑도 끝도 없는 온갖 말들을 짜증과 피곤함 속에서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던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이다.
십계명이든 오계명이든 어떤 형식으로라도 임기 시작 전 공복으로서 최소한의 자기규정을 엄격하게 세운다는 의미는 본인은 물론 유권자들에게도 매우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공약 실현과 의정 활동의 각오부터 현안 처리에 대한 나름의 기준까지 각자 처지에 맞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해도 좋겠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일단 한 번 시도해 본다면 분명히 그 전과 이후의 차이는 스스로 확연해지리라 여겨진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