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기후 소송이 시작됐다
논설위원
헌재, 23일 ‘기후 위기 헌소’ 공개 변론
정부 온실가스 정책 기본권 침해 쟁점
재판 결과 따라 기후 정책 전환점 전망
기후 재앙 기업 책임 묻는 소송 봇물
‘인재에 의한 불의’의 관점으로 접근
기업들 ‘기후 문해력’ 하루빨리 높여야
헌법재판소가 23일 ‘기후 소송’의 공개 변론을 시작했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환경권과 생명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청소년단체 등이 낸 헌법소원 4건을 병합해 본격 심리에 들어간 것이다.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9명이 2020년 3월 헌법재판소에 첫 헌법소원을 낸 지 4년 1개월 만이다. 2021년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 등 130명이 참여한 ‘시민기후소송’, 2022년 태아를 포함한 어린이 62명을 원고로 한 ‘아기기후소송’, 2023년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가 제기한 기후 소송 등 유사 헌법소원이 이어졌다.
청구인들은 정부가 탄소중립기본법에서 정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 목표가 기후 위기 대응에 부족하고 미래 세대에 피해를 전가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산업구조의 현실과 가용한 기술 수준을 감안해 설정된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헌재가 기후 소송을 심리한 전례가 없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청구인들은 “기후 위기가 단순히 경제나 환경 정책 문제가 아닌 기본권 문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에서 기후 위기 대응이 인권과 기본권 문제라는 결정이 나오면 아시아, 나아가 세계적 기후 문제 해결의 큰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첫발을 뗀 소송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책임을 묻는 판결이 잇따랐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정부는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20%에서 25%로 확대하라’는 ‘우르헨다 소송’ 판결로 기후 소송의 새 역사를 썼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미래 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 조치도 국가 의무’라며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미래에 떠넘기는 현행 법령은 위헌이다’고 결정했다. 독일 정부는 헌재 결정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 65%, 2040년 88%로 상향하고 탄소 순 배출량 0이 되는 탄소 중립 목표 연도도 2045년으로 5년 앞당겼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몬태나주 법원이 ‘정부가 에너지 사업 허가를 내주면서 기후 영향을 고려하지 않도록 한 조항이 위헌’이라며 정부 기후 대응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최근 ‘스위스 정부의 온실가스 정책이 충분하지 않아 2000명이 넘는 여성 노인들의 인권을 명백히 침해했다’며 ‘8만 유로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기후 소송이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과 자본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미국 시카고주는 6개 글로벌 석유기업을 대상으로 이들 기업이 석유와 천연가스 상품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고의로 호도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나라 한 기업은 호주 티모르해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하다 온실가스 배출로 주민 재산권과 환경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고 결국 사업을 중단했다. 경남환경운동연합 등은 2월 국민연금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국민연금공단이 ‘탈석탄 선언’을 했음에도 좌초 자산이 될 수 있는 석탄기업에 투자를 확대해 국민연금에 재정적 위험을 초래했다는 취지다.
친환경을 강조하지만 친환경이 아닌 이른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은 환경단체의 주요 소송 타깃이다. 항공사에서부터 패션업계, 육가공업체에 이르기까지 허위 광고 ‘그린워싱’ 사례로 소송을 당하는 일이 줄을 잇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그린워싱’ 판단 기준 마련을 위해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 지침’을 개정했다. 기후 공시제도가 의무화하면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기업에도 이제 먼 나라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최근 각국이 판결을 통해 기후 문제를 구체적 권리로 인정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각국의 기후 소송은 고유한 법과 제도에 기반하고 있지만 기후 과학에 근거한 기후변화 목표 설정이나 국가와 기업의 책임 범위 등은 국제법상 공통의 법적 문제로 각국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국내 로펌들이 최근 환경부 고위 공무원을 영입하는 등 환경팀을 키우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상 기온과 기후 재앙은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사과가 금값이 되는 ‘기후플레이션’ 파괴력도 현실이 됐다. 결국 이는 통계적으로 구체화하고 기후 소송의 근거가 될 것이다. 기후 위기는 이제 환경단체가 벌이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급증하는 기후 소송은 세상이 기후변화를 ‘천재에 의한 불운’이 아닌 ‘인재에 의한 불의’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한 우리 기업, 특히 지역 기업의 대응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기후 문해력’을 빨리 익히지 않으면 결국 ‘기후 악당’이나 ‘기후 문맹’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