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 지방세로 이양하는 재정 자립이 자치 출발점 [지방자치 30년 균형발전 원년]
전문가 4인 진단과 과제
권한 없이 사무만 떠안은 지방, 낮은 재정자립도, 무관심한 지역 주민. 민선 지방자치 10년, 20년에도 지적됐던 한계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부산일보〉는 지난달 17일부터 23일까지 지방자치 전문가 4인을 만나 민선 지방자치에 대한 진단과 필요성,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물었다.
한국지방정부학회 김형빈(동아대 행정학과 교수) 회장, 신라대 박재욱 행정학과 교수,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 황한식 상임대표, 부산연구원 박충훈 책임연구위원에게 물은 질문과 답변을 아래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Q. 30살 민선 지방자치, 평가는?
△김형빈(이하 김)=주민이 단체장과 의원을 뽑는다는 외형만 갖췄지 주민이 스스로 지역 문제를 자기 부담으로 해결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대로 가면 바뀌기 어렵다. 30년 전 국세와 지방세 비중이 8 대 2였고, 30년간 0.1%대 수준에서 지방세 비중이 늘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민 참여가 적은 점을 두고 주민만 탓할 수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 행정구역과 생활권 불일치 문제가 있고, 지자체 권한이 없으니 주민도 참여를 통해 지역을 바꾸는 희열을 느낄 수 없다.
△박충훈(이하 박)=지방세 비율이 OECD 국가와 비교해 매우 낮은 건 아니지만, 숫자 이면을 봐야 한다. 엄격한 조세법률주의 때문에 지방에서 스스로 세금을 조정하고 거두는 게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중앙정부의 임의적인 판단에 의해 지방세가 흔들리기 쉽고, 재정을 예측하면서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 특히 기초지자체는 재산세 비중이 큰데, 수도권 부동산 과열을 잡겠다고 지방세 특례 조치를 내리면 지방 지자체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세출을 보면 지자체는 정부의 지역 사무소 같은 역할을 한다. 75 대 25 수준으로 세금 수입이 발생하는 반면 지출 비중은 5 대 5다. 대부분 사회복지나 보건 예산이고, 지방에서 자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걸 빼면 지방에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방세입 증가 추세보다 부담률 증가 추세가 빨라 더욱 우려된다. 부산시 2040년 장기재정전망을 분석해 보니, 지방세 수입은 연 평균 3.1% 증가하는데 자부담 지출은 4.2%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재욱(이하 재)=지방정부가 갖춰야 할 4대 자치권인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행정권, 자치조직권이 확장되지 않았다. 지방의회의 역할이 중요한데 조례제정권이 헌법상 제약을 크게 받고 있어 충분히 성숙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정책 추진력도 문제지만, 지방정부 간 오래된 경쟁 구조, 뿌리 깊은 중앙집권적 행정문화, 지역 이기주의에 갇힌 단체장의 편협적 리더십 등 지방정부 스스로의 문제점도 크다.
△황한식(이하 황)=본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첫째 이유는 지자체장이 주민 참여에 중점을 둔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자주 비추는 시민사회 리더도 과연 충분히 시민 당사자성을 나타내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권마다 비슷한 정책, 비슷한 자문기구를 만들었는데 다양성이나 시민 대표성을 갖추지 못했다. 충분한 시민 공론화 과정이 없으면 한계는 분명하다.
Q. 지방자치, 왜 필요한가?
△황=중앙집권적 체제에서 원자화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주민이 내가 사는 지역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고, 나아가 지방자치가 중앙집권에 압력을 가하는 모습이 돼야 한다. 그렇게 중간 집단이 건강하게 성장한 사회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김=수도권 집중 과열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국토가 비효율적이고 기형적으로 운영되니 저출산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제는 충청권 이남은 지역이 전멸할 위기다. 다극 체제를 확립해 국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재=지방소멸 위기에 이제는 지역민 스스로 지역 역량에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GTX 개통 등 동맥경화가 발생할 정도의 수도권 중심 공간정책을 펼친다. 반면 지역에 공항 하나 만드는 건 20년간 온 시민과 지자체가 진을 다 빼고 있다. 지방자치의 장점 중 하나는 국정의 독재화를 방어하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계엄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경제·사회적 구조가 고도화해 이제는 정부가 개별 지방의 상황에 맞춰 정확히 진단하고, 개발하는 조치는 불가능하다. 지자체가 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 강화가 지자체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격차를 우려해서 국세의 지방세 이양 등 지방분권을 두려워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지역 간 격차를 교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격차가 우려되니 모든 걸 맡는다는 건 맞지 않다.
Q. 지방자치, 앞으로 어떻게?
△황=앞으로는 끼워넣기 전략에서 새판짜기 전략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헌법 117조와 118조가 지방정부나 지방의회 설립 근거 정도를 다루고,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입법권을 보장해 지방자치를 옥죈다. 또 중앙 정치권이나 일부 대표 시민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는 ‘당사자성’을 지닌 주민이 자치분권 전략의 주체가 돼야 한다. 자치분권에 헌신하는 적극적인 주민들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재=나눠주기식 공공기관 이전이나 단순 배분식 재정 지원을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광역 차원의 지방정부 출현이 필수다. 전국적인 지방행정체제 개편도 시급하다. 또 수도권의 인구나 기업을 분산시킬 수 있는 밀어내는 힘을 만들어야 한다. 사문화된 수도권정비법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박=돈을 어떻게 거두고 어떻게 쓸지 대해 지방이 자율성 갖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 지역 차원의 발전 전략을 구상하는데,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자유롭게 이끌어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당연히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에 국가에서 보조금을 계속 줄 수 없을 것이고, 지방이 민자 투자를 받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려면 행안부에서 통제한다. 지역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해주고, 그 결과를 지역이 책임진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웃한 지자체와 공동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은 광역연합 형태로 인접 지자체끼리 청소 등 공공서비스를 함께 부담한다. 국내에도 특별연합 등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추상적인 거대 담론 위주로 활용돼 아쉽다.
△김=첫 번째는 행정통합이다. 마냥 규모의 경제를 갖추자는 게 아니다. 부산 경남 행정통합안은 20개 특례 등 상당 부분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요구를 담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권한을 일부 달라고 중앙에 요구할 수 있다. 주민의 행정통합에 대한 참여가 성공 요인인데, 그러려면 현재 지역 내에서도 존재하는 불균형에 대해 함께 살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는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 보충성의 원칙 등을 보장하는 방향의 개헌이다. 한국 지방자치제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정치적으로 만들어졌고, 정치적으로 운용돼 왔다. 앞으로 지방자치를 바꾸는 데에는 결국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고, 주민과 시민의 힘을 응축해야 한다.
사진=이재찬 기자 chan@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