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마더와 머더 사이
영화평론가
브누아 들롬 감독 영화 '마더스'
절친했던 두 가족의 비극 이야기
파스텔톤 색감으로 공포 그려내
능력 있는 남편, 착하고 귀여운 아들, 아름다운 엄마까지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상적인 모습의 두 가족이 등장한다. 게다가 완벽한 이웃까지 두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셀린’과 ‘앨리스’는 동갑내기 아들을 둔 엄마라는 점에서 통하는 게 많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들과도 자주 시간을 보내고, 자식들도 절친이니 서로의 가정사에 비밀이 없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만 아들 ‘테오’의 양육 때문에 고민하는 앨리스를 위해 셀린은 서슴지 않고 테오를 돌봐주겠다고 할 정도로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대한다. 이 모습은 이웃을 넘어 자매처럼 보일 정도다.
언제나 행복할 것만 같던 그들에게 사건이 발생한다. 셀린의 아들 ‘맥스’가 새 둥지를 고치기 위해 2층 난간에 올라서던 중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불행한 사고가 벌어진다. 그런데 맥스의 죽음은 셀린의 가족뿐 아니라 앨리스 가족의 일상도 무너뜨린다. 셀린은 자식을 돌보지 못했다는 데서 깊은 죄책감을, 앨리스는 맥스가 발코니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아이를 구하지 못했기에 복잡한 심경이다. 서로를 애틋하게 챙기던 둘 사이엔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생긴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이 지점부터 달라진다. 따뜻하고 행복한 가족극인 줄 알았더니, 상상치도 못한 잔혹극으로 흘러간다. 그 중심엔 ‘마더스’가 있다.
셀린과 앨리스를 강하게 결속시켰던 존재가 자식이었기에 아이를 잃은 엄마 셀린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존재가 바로 엄마가 아니던가. 이는 마더(mother)가 순식간에 머더(murder)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영화는 아이를 잃고 불안정한 심리를 보이는 셀린이 아니라, 앨리스로 초점을 이동하며 어떤 일이 발생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맥스의 죽음 이후 실의에 빠져있던 셀린은 안정을 취하려 집을 떠났다가 한 달 만에 돌아온다. 그런데 반갑게 맞아줄 줄 알았던 앨리스는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 특히 셀린이 테오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앨리스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고 보니 앨리스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셀린이 돌아온 후부터다. 앨리스는 셀린이 복수를 한다고 주장하고, 앨리스의 남편은 그녀가 과대망상에 빠졌다고 다그친다. 아이를 잃은 건 셀린인데, 매일밤 잠들지 못하는 건 앨리스다.
‘마더스’의 색다른 부분은 자식을 잃은 엄마의 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절친했던 이웃의 불행이 가깝게 지내던 또 다른 엄마에게 전이된다는 점에 있다. 물론 전이된 죄책감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만들고, 신뢰했던 셀린을 경계하고 의심하다 결국 무엇이 현실이고 망상인지 헷갈리는 지경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앨리스와 셀린 두 가족을 조명하며 가족영화처럼 연출했다면, 맥스의 사고 이후 앨리스의 시선으로만 상황을 볼 수 있게 카메라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관객이 전체 상황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불안함을 야기하려는 의도이다.
‘마더스’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채털리 부인의 연인’ 등의 촬영감독이었던 브누아 들롬 감독의 데뷔작이다. 자식을 잃은 셀린과 가족을 지키려는 앨리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감독의 연출은 새로운 게 없지만 영상미는 탁월하다. 스릴러 영화라고 한다면 어두운 조명이 쓰일 거라 예상하지만, 감독은 예상을 깨고 아름다운 영상미로 공포를 자극한다. 한낮의 풍경 속에 스며드는 파스텔톤의 색감들은 눈을 자극하는데 그것이 기이하고 이질적인 공포를 만든다. 더불어 셀린을 연기한 앤 헤서웨이의 엄마 연기는 슬픔과 혼란, 균열과 뒤틀림 등 미묘한 감정들을 잘 표현해내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