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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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무성영화처럼 대사 한마디 없는 데도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영화는 실사 같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3D 애니메이션도 아니다. 주인공인 ‘개’와 ‘로봇’의 모습을 선의 연결로만 완성하는 그림체는 단순하고 어쩐지 무심해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눈빛만으로도 수많은 감정을 전달하고, 국제 무역센터의 두 건물과 브루클린 다리 등을 배경으로 한 뉴욕시 전경을 쨍한 색채로 전달하는 건 실사보다 더 감성적인 느낌을 자아낸다고 확신한다. 또한 개와 로봇이 주인공이지만 만남과 이별, 외로움,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데서 이들을 인간으로 바꿔보아도 어색하지 않다는 점도 영화의 특징이다.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로봇 드림’은 ‘도그’가 ‘로봇’을 구매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1980년대 뉴욕 맨해튼에서 혼자 사는 도그는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매 순간이 외롭다. 창문 밖에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모여 다들 행복한데 자신만 혼자이기 때문이다. 무료한 얼굴로 TV 채널을 돌리던 때, 도그는 반려 로봇 광고를 보게 되고 홀린 듯 로봇을 주문한다. 기다리던 로봇이 도착하고 이제 도그의 삶도 달라진다. 혼자 했던 모든 것을 로봇과 함께 나누며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간다.

파블로 베르헤르 영화 '로봇 드림'

뉴요커 개와 반려로봇의 우정 담아

만남과 이별로 성장하는 과정 조명

하지만 영화는 도그와 로봇의 행복한 시간은 길게 보여주지 않는다. 물놀이를 하러 간 해수욕장에서 로봇이 고장 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둘은 원치 않은 이별을 하기 때문이다. 도그는 해수욕장에 홀로 남게 된 로봇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애쓰지만, 겨울을 맞아 폐장된 해수욕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감독은 홀로 남은 도그와 로봇의 상황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로봇 드림’이 단순히 우정을 논하는 작품이 아님을 알린다.

도그는 외로워서 로봇을 구매했고 이내 로봇과 친구가 되었지만 그 로봇을 잃어버리면서 다시 외로워진다. 다른 친구를 사귀어 보려고도 하지만 쉽지 않아 도그는 새로운 로봇을 구매하기에 이른다. 함께 하는 행복을 몰랐다면 모르지만 그 기억을 안고 평생 홀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폐쇄된 해수욕장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있는 로봇은 언제 올지 모르는 도그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실 로봇은 도그보다 훨씬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로봇은 외롭다고 말하는 대신 자신에게 찾아오는 새들과 우정을 나누고, 도그와 만나는 날을 꿈꾸며 외로움을 이겨낸다. 로봇의 다리가 잘려 나가고, 고물상에 팔려 온몸의 부품이 분해돼 소멸 직전까지 이르는 고통스러운 순간까지도 말이다.

‘로봇 드림’은 도그와 로봇이 이별한 후 오는 그리움이나 상실감에 매몰되지 않고 다시 사회에 적응해 가는 과정, 그리고 지나간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분해된 채 고물상에 널브러져 있던 로봇을 발견하고 살린 건 너구리 ‘라스칼’이다. 라스칼의 도움으로 로봇도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도그도 새 로봇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제 둘은 서로를 잊은 듯 보인다. 하지만 로봇은 도그를 잊지 않았다. 여전히 도그와 닮은 누군가를 만나면 물끄러미 바라보고, 둘이 좋아했던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슬픈 표정을 짓는다.

영화는 누군가와 이별했다고 해서 사랑했던 기억마저 단번에 지워지지 않음을 로봇을 통해 말한다. 로봇은 도그와 행복했기에 가슴 속에 묻어둔 기억을 가끔 꺼내어 본다. 또한 도그와 보낸 시간이 있었기에 현재의 삶이 충만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물론 도그와의 이별은 아팠지만 그 시간 때문에 현재 라스칼과의 관계도 성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도그와 우연히 만난 로봇은 원망과 슬픔을 말하는 대신 진짜 이별을 선택한다. 만남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지만 헤어짐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키며 성숙한 사랑과 관계가 무엇인지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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