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진의 타임 아웃] 가장 경계되는 선수는?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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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부 차장

기자들도 취재 대상이 되곤 한다. 특히 해외 취재진을 만날 때 그렇다. 한 달 전 성황리에 끝난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취재하다 뜻밖의 투표 기회가 생겼다. 미디어센터에서 일본 취재진이 다가와, 자국 여자탁구팀 멤버 중 ‘가장 경계되는 선수’를 꼽아달라고 했다. 패널에 인쇄된 3명의 선수들 중 대충 1명을 찍으려다 부산을 찾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다음에 투표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날 저녁, 한국 대표팀 기사를 마감한 뒤 일본 탁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야타 히나(당시 세계랭킹 5위)와 히라노 미우(18위), 하리모토 미와(16위)를 앞세운 일본 여자대표팀은 ‘우주 최강’ 중국과 겨루는 세계 2위의 강팀이었다. 랭킹에서 보듯 하야타는 현존 에이스, 만 15세 하리모토는 일본 탁구의 미래로 불렸다. 한국 여자대표팀이 8강 조 추첨 불운으로 일본 대신 중국과 만나게 됐다며 아쉬워했는데, 실은 일본 탁구도 중국 ‘탁구장성’에 견줄 만큼 강했다.

다음 날, 다시 마주친 일본 취재진 앞에서 대세 하야타에게 한 표를 던졌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하리모토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일본 남자대표팀 간판인 친오빠 하리모토 토모카즈 못지않은 천재성으로 주목받은 동생 하리모토는 지난해 6월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컨텐더 튀니스 대회에서 우리나라 신유빈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대회 막바지, 중국과 일본의 여자 결승전에서 드디어 하리모토 경기를 직관할 짬이 났다. 1단식에서 세계랭킹 1위 쑨잉샤에게 무릎을 꿇은 하리모토는 팀 언니들의 선전으로 매치스코어 2-2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탁구대 앞에 섰다. 우승컵의 향배를 좌우할 마지막 주자는 10대에겐 버거울 법한 중책. 하지만 하리모토는 경기 내내 거침없는 플레이로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천멍(3위)을 괴롭혔다. 급기야 첫 세트(11-4)를 먼저 따내자 경기장 전체가 술렁였다. 결국 1-3(11-4 7-11 8-11 7-11)으로 역전패하며 중국에 우승컵을 내줬지만 2008년생 중3 선수의 당당한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산 대회를 계기로 탁구의 매력뿐만 아니라 선수들에 대해 알게 된 건 또 다른 수확이다. 특히 이웃나라 탁구를 유심히 살필 수 있었던 건 ‘투표’ 덕분이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한 표의 가치는 투표권자 하기 나름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이든 새 학기 반장 선거든 후보(선수)들 이력과 언행을 눈여겨보면 선거라는 경기판이 한층 흥미롭게 다가온다. 만약 일본 취재진이 ‘2024 파리올림픽에서 가장 경계되는 선수’를 묻는다면? 이번엔 ○○○○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 ‘비밀투표’라 지금 공개할 수는 없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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