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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란티모스 감독 영화 '가여운 것들'
무늬만 어른인 벨라의 성장기 다뤄
우아하고 환상적인 연출방식 주목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스크린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서사도 그러하며 정교한 연출, 독특한 미장센, 기괴한 사운드는 영화가 끝나고도 움직일 수 없게 한다. 아마도 주인공 ‘벨라’가 둥지를 떠나 낯선 세상과 만나며 느끼는 감정을 관객들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디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개성적인 영화로 말미암아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논란이 뒤따르기도 한데, 이번 영화 ‘가여운 것들’도 그렇다. 냉소와 풍자, 그로테스크하고 파격적인 영화 세계는 여전하지만 전작들과 다르게 밝고 어딘지 동화적인 느낌도 물씬 풍긴다. 란티모스 감독은 이상하지만 놀라운 영화로 시선을 끈다.

한 여인이 강바닥을 향해 몸을 던지는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면 천재 과학자 ‘갓윈 벡스터’와 함께 사는 의문의 여인 벨라가 등장한다. 갓윈은 자신의 제자 맥스에게 여성의 몸을 가졌지만 신생아처럼 행동하는 벨라를 연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성실한 청년 맥스는 벨라의 일상을 기록하면서 갓윈이 숨기고 있던 진실을 알게 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치 하느님인 것처럼는 갓윈과 어쩌다 보니 벨라를 사랑하게 된 맥스, 어른의 몸을 가졌지만 아이처럼 행동하는 벨라의 기이한 동거가 이어진다.

몸만 어른이었던 벨라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세상이 궁금하고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갓윈과 맥스의 보호 속에서 살기를 거부하며,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과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벨라는 생애 첫 선택을 한다. 리스본과 알렉산드리아, 파리로 떠나는 여정 속에서 벨라는 여러 사람과 만나며 사회를 알게 되고 다양한 감정들을 배운다. 호기심과 성적 쾌락에서 오는 즐거움만 알았던 그녀는 이제 에머슨의 시집과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으며 고통, 분노와 슬픔, 보수적인 남성 사회의 모순도 알게 된다. 하물며 자신의 몸이 생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벨라가 자살하려고 했던 이유와 갓윈과 덩컨이 벨라를 대하는 방식은 그녀를 소유물로 여기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이는 19세기 영국이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그로 인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규칙이나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벨라는 이상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벨라의 여정이나 모험 그녀의 기이함을 말하는 데 의도가 있지 않다. 영화에는 걷는 법을 몰라 뒤뚱뒤뚱 걷던 벨라가 신체를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팔과 다리를 멋대로 흔들며 춤추는 벨라의 모습은 그녀의 옆에서 틀에 박힌 춤을 추는 사람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관습과 계급이 무너지는 순간이며 영화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장면이다.

벨라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변화도 흥미롭다. 벨라를 소유물로 여겼던 갓윈은 그녀를 그리워하다 병을 얻고, 사랑에 빠질 리 없다고 단언하던 덩컨은 벨라를 끔찍이 사랑하게 되면서 관계가 역전된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다시 갓윈의 저택으로 돌아온 벨라는 자신을 가두고 구속했던 모든 것들에서 스스로 벗어난다. 사실 여성의 성장이나 자유가 섹스나 성매매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가여운 것들’의 논란은 남아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주는 매력은 충분하다. 벨라의 여정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스크린에서 구현되는 모든 것들은 우아하고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저택에 갇혀 있던 벨라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초광각 렌즈를 활용한 장면이나, 흑백 화면이 벨라의 여행을 기점으로 다양한 색채를 띠는 연출은 환상적이면서도 한편의 동화를 연상시킨다. 영화 초반 불협화음의 음악은 거슬리지만 이 역시 벨라의 성장에 따라 점차 안정적인 음악으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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