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다시 불붙은 ‘중동 화약고’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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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 꼬인 바이든의 ‘평화 해법’… 새 중동 질서 자리 잡나

17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다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오른쪽은 하마스의 로켓 공습으로 겁에 질린 이스라엘 여성. AFP·AP연합뉴스 17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다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오른쪽은 하마스의 로켓 공습으로 겁에 질린 이스라엘 여성. AFP·A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선을 넘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1300명이 살해된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 폭발로 500여 명이 사망하면서 전쟁이 중대 갈림길에 섰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습이라고 주장했으나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오발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집트·요르단·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예정된 4자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쟁 해소 노력에도 중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1973년 10월 6일 토요일 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진 뒤 정확히 50년, 평화 무드가 깃들던 중동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하마스, 왜 지금 기습 공격했을까?

하마스는 2007년 6월 내전 끝에 서안지구에 근거지를 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따르던 파타 세력을 축출,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권리 및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이스라엘 제거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해석한다. 하마스는 최근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국과의 관계 개선을 심각한 고립 위기로 인식했다. 자신들의 기반이 흔들리자, 국제적 관심을 끌기 위해 이스라엘에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양측의 충돌은 기독교-이슬람의 문명 충돌, 종교 갈등, 영토 분쟁 등 복합적 요인이 깔려 있다. 핵심은 서로 ‘내 땅’이라는 심리적 요인과 토지를 둘러싼 갈등이 불씨다. 특히, 이스라엘은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계 유대인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2020년에만 점령지 서안에 총 1만 2000채 이상의 유대인 정착촌 주택 건설을 추진했다. 결국 살던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게다가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집권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적 강경 정책은 반이스라엘 정서를 부채질했다.


■미국 등 서방의 ‘시온주의’ 친이스라엘 외교

미국과 이스라엘은 외교·군사 차원에서 공동체에 준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07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러닝메이트로서 “이스라엘은 미국이 중동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며, 나는 시온주의자이고, 시온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유대인일 필요는 없다”라고 연설했다. 시온주의자는 꼭 유대인이 아니라도,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 건설 및 강화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정의된다.

바이든으로서는 202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유대인 사회의 지지가 절실한 상황에서 시온주의 정책을 바꿀 이유가 없다. 최근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나는 미 국무부 장관뿐 아니라 유대인이자 남편이자 아버지로 여러분 앞에 섰다”라고 한 게 이를 증명한다.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개선 물거품 위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저조한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개선을 통한 외교적 성과로 돌파구를 삼으려 했다. 올해 2월에 역사상 최초로 이스라엘 국적 항공기가 사우디-오만 항로를 비행했고, 수에즈운하 해상수송로보다 운송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스라엘 하이파항-요르단-사우디-UAE 걸프만 간의 육지 연결로(land bridge) 건설 논의도 진행했다. 이스라엘은 건국 72년 만인 2020년 UAE에 이어 모로코, 수단, 바레인과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다양한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설치 등도 논의 중이다.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안상욱 교수는 “이번 사태로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평화 외교 노력이 수포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중국, 경제적 영향력으로 중동 질서 개입

예멘 내전에서 대리전을 치렀던 사우디와 이란이 단교 이후 7년 만에 관계 정상화를 이뤘다. 수니파와 시아파, 왕정과 혁명 정권, 친미와 반미 등으로 반목했던 두 국가의 화해가 중동 질서 재편에 변곡점이 됐다. 하지만, 중재의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지난 3월 사우디와 이란 측을 베이징에 불러 양국 국교 정상화를 공식 선언했다. 중국의 중재 성공 원인은 경제적 영향력 확대다. 중국은 사우디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고, 사우디 네옴시티 건설의 핵심 파트너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의 최대 수혜국이 사우디이기도 하다. 이란은 중국으로부터 향후 25년간 4000억 달러를 투자받는 등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 유일한 조정자 자격에서, 중국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공존하는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한편,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는 이스라엘에는 안보 위협으로 작동했다. 직접적 증거는 없지만, 자신감이 충만한 이란이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 분위기를 직간접적으로 부추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중동 미군 기지까지 타격할 경우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아랍 형제들도 꺼리는 팔레스타인 난민

팔레스타인과 국경을 맞댄 이집트는 유일한 라파 통행로를 닫은 상태이다. 이미 수단, 시리아, 예멘 등 난민 900만 명이 몰린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쏟아지면 정치·안보적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쟁이 격화될수록 가자지구에 갇힌 팔레스타인 주민의 인도주의적 피해는 급증할 전망이다.

레바논에서는 남부 해안의 난민촌에서 지난 7, 9월에 팔레스타인 정파 파타와 하마스 관련 극단주의 단체 간에 내전에 가까운 교전이 벌어져 수십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뒤에서 웃는 국가가 최고 수혜자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지역 내 갈등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는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졌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은 중동에서 정치·경제·안보 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그 반작용으로 미국이 사우디와 한미 동맹 수준의 상호방위조약 체결, 이란의 재고립 시나리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민이다. 당장 이란이 배후로 주목받고 있지만, 국제 질서의 변화로 인한 최대 수혜자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판단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어느 국가에 유리한 판세가 형성될지로 판가름 난다는 설명이다.

부경대 안상욱 교수는 “미국과 EU 등은 중동전쟁과 오일쇼크 재발 상황을 우려하고, 각국에서는 종교혐오 테러가 번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주요 국가들이 사태 진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1300여 명의 국민이 살해당한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들의 뜻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또 병원 참사와 같은 폭발성 높은 상황이 재연되고, 이란 등 외부 국가가 군사적으로 개입할 경우 강대국 간 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질 위험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루속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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