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신춘문예-수필 가작] 바디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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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류지혜 기자 birdy@

집안 정리를 하기 위해 창고 문을 열었다. 창고 안은 이것저것 밀려난 살림살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쪽에는 크고 작은 솥들과 대나무 소쿠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또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상자가 입을 봉하고 있다. 상자를 열자 언제 넣어 두었는지 바디가 보인다.

길쌈을 할 때 날실을 끼울 수 있도록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만든 것이 바디다. 바디는 날줄 사이로 씨줄이 담긴 북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참빗처럼 촘촘하게 생긴 바디 사이에 날줄을 끼우면 베 짜기는 시작된다. 이때부터 씨실을 문 북과 날줄을 문 바디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북이 가로 길로 지나가면 바디가 세로 길로 내려오고 다시 북이 돌아오면 바디 역시 시차를 두고 내려와 앉는다. 한 필의 베를 짜기 위해서는 한 올의 씨줄과 날줄이라도 어긋나면 베가 안 되듯이 우리네 삶도 이와 같으리라.

가지런한 바디의 모습은 아직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도 주어진 몫에 마다치 않고 묵묵히 지켜온 세월이 그립다.


남편이 북이라면 나는 바디가 아니었나 싶다. 천지사방 옷자락을 휘날리며 다니는 남편이야말로 매끈한 몸으로 바람처럼 베틀을 누비는 북과 다를 봐 없다. 밤낮없이 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속을 태우는 나는 베틀에 매여 있는 바디와 닮은꼴이다. 하나 부드럽지 못하고 꼿꼿한 성격끼리 만난 우리는 여태 수더분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해 부부모임에서 단풍놀이를 갔을 때였다. 붉은 단풍만큼이나 우리 부부의 젊음도 곱던 시절이었다. 단풍에 취해서 가을의 짧은 해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산속의 새들도 제집을 찾아들 시간, 집에 올 때가 되었는데 그제야 남편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일행들이 산 계곡을 훑고 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큰 소리로 불러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였다. 일행들 보기가 민망하여 산새처럼 날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조금 전에 흥에 겨워 부른 노래가 마음속에서는 울분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쩌랴. 일행들과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남편이 밉다가도 제발 무사하게 와주기만을 바랐다.

집에 도착하니 캄캄해야 할 방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한편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말도 하기 싫었지만 "왜 먼저 왔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과 신 나게 놀고 있는 것에 화가 나더라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늴리리 맘보춤을 춘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야외에서 노래는 물론이고 춤을 추면서 즐기던 때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혼자 돌아온단 말인가. 그날의 내 마음은, 아이라면 있는 힘을 다해 두들겨 때려주고 싶었다. 두 번 다시 보기도 싫었지만 그래도 없어져서 애를 태우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뀌고 중년이 되어서도 남편의 너그러움은 늘어날 줄 몰랐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자기주장만 밀고 나갔다.

사람의 성격은 조금은 변할 수 있으나 많이 바뀌기는 어렵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북이 달아나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느낌이다. 남편은 나와는 언제나 생각이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반대론을 펼친다. 희망적인 것보다 염려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한 사람이 산이라면 한쪽은 강이 아니었나 싶다.

몇 년 전 친정어머니 생신이라 형제들이 우리 집에 모이기로 했다. 그날 아침 남편과 대화를 하다가 의견차이가 났다. 대화가 다 일맥상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 않은가. 음식을 준비하다보니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 찾아보아도 없었다. 전화해 보니 아예 받지도 않는다. 대문에는 언니 동생들이 짝을 지어 몰려 들어오고 있다. 그들이 알기라도 하면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 싶어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드디어 언니와 동생들이 눈치를 읽었는지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해서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베를 맸다. 바디에 실을 끼우는 일로, 베를 짜기 위한 마지막 작업이었다. 바디의 섬세한 틈 사이에 한 올이라도 빠뜨리지 말아야 바디와 날줄이 맞물려 제자리를 찾아 바로 앉게 된다. 날줄은 너무 말라도 젖어도 안 된다. 혹 마르기라도 하면 물을 축여 꼽꼽하게 만들어야 실이 잘 끊어지지도 않고 바디 사이로 북이 순조롭게 들락날락한다. 그리고 베를 짤 때마다 북 질을 몇 번 하고는 늘 바디집을 탁탁 쳤다. 그렇게 해야 베올이 느슨하지 않고 올이 성긴 데가 없이 곱게 짜지기 때문이었다.

바디집을 치는 것은 우리 인생의 긴장감 같은 것이리라. 바디집을 친 뒤에야 엉성하지 않고 야무진 베가 되듯이, 평탄한 가정을 위해 서로가 고삐를 당기기도 늦추기도 해가며 이제껏 살았다. 그렇게 이래저래 살다 보니 마음을 조금씩 넓게 가지면서 인내를 쌓아가게 되었다. 그것이 집안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바디를 닦아본다.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색깔만 좀 짙어졌을 뿐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오래된 세월에도 삐뚤어지지 않고 간결한 그대로이다. 어쩌면 이토록 좁고 넓은 데가 없이 한결같은지. 그것 역시 삶에서 이탈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온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북이 제멋대로 날줄 위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바디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내 몫이라 여기며 기꺼이 거부하지 않고 살아 왔다. 하지만 바디가 아무리 틀을 잡고 있다 하더라도 북이 없으면 저 혼자 베를 짤 수 없고, 북 또한 씨실을 물고 다닌다 하여도 바디가 받쳐주지 않으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한다.

가지런한 바디의 모습은 아직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도 주어진 몫에 마다치 않고 묵묵히 지켜온 세월이 그립다. 그 세월 뒤에는 밀고 당기는 북과의 긴 시간이 있었다. 북과 바디는 붙어서 함께 가야 하는 끈끈했던 삶들이었다. 바디 살처럼 내리는 빗속으로 지난날이 얼비친다. 대지를 적시는 비처럼 내 마음도 감회에 젖어드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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