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물원의 종말, 생명존중 공간의 시작
배일권 신라대 반려동물학과 교수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 ‘삼정더파크’가 운영사와 부산시 간의 장기 소송으로 남겨진 동물들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지곡동물원 시절부터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공간의 소멸은 단순히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동물을 구경거리로만 여기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날 전국의 많은 동물원들은 만성적인 적자와 시설 노후화라는 굴레에 갇혀 있다. 반면 동물권과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눈높이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낡은 철창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갇힌 동물들의 정형행동은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묻어나는 깊은 고통과 외로움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거기에 더해 지자체의 재정부담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도시의 또 다른 그늘, 바로 유기동물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거리로 내몰리고 지자체 보호소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넘쳐나는 동물을 감당하지 못해 반복되는 안락사와 그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가 떠안고 있는 무거운 고통이다. 이제는 이 두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해법으로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그 해답은 바로 동물원을 생명존중 공원(Animal Welfare Park)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동물과 사람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생명존중 공원의 핵심은 유기동물을 위한 전문 입양 및 교육센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바로 동물복지 선진국 독일의 티어하임(Tierheim)이다. 티어하임은 단순히 유기동물을 임시 수용하는 장소를 넘어 ‘안락사 없는 보호’를 대원칙으로 삼는 거대한 생명존중의 요람이다. 이곳에서는 수의사와 훈련사, 행동교정 전문가 등 동물전문가가 상주하며 상처받은 동물들의 신체적, 정신적 재활을 체계적으로 돕는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원과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투명한 참여로 운영되는 이 시스템은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만약 부산에 생명존중 공원이 조성된다면 바로 이 티어하임 모델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구현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기존의 좁고 열악한 보호소를 넘어 동물이 존엄을 지키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희망의 공간이자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교감하는 열린 교육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입양을 희망하는 시민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행해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책임있는 반려문화를 확산시키는 중심축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기존 동물원 동물들을 위한 배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이들을 위한 생츄어리(Sanctuary) 공간 역시 필요하다. 더 이상 전시와 오락의 대상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생명으로 존중받으며 평온한 여생을 누릴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동물을 희생시켜온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며 동시에 성숙한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이러한 전환에는 비용과 노력이 뒤따른다. 그러나 외면받는 낡은 시설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새로운 철학을 실현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투자인지는 분명하다. 동물원이 사라진 자리는 단순한 공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동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새롭게 정립하는 시험대이다. 부산시의 결단과 시민들의 공감이 더해진다면 동물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공간은 머지않아 도시 전체를 밝히는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동물의 눈물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그 눈물을 닦아주는 길을 함께 열 것인가. 역사는 우리가 내리는 이 선택을 기억할 것이다. 생명의 존엄을 존중하는 길만이 인간다움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