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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부산항 북항 문학 르네상스를 꿈꾸며
올해 5월 7일은 1985년 ‘5·7문학협의회’가 결성된 지 40주년을 맞는 날이다. 군사독재와 반민주주의의 폭거가 횡행하던 때,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을 비롯한 소설가와 시인 및 문학평론가 등 일군의 문인들이 문학인의 결속과 협의체의 필요에 따라 중구 동광동의 한 식당에 모여 5·7문학협의회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이 협의회는 1987년 11월 ‘부산민족문학인협의회’로 확대 재편되어 지금의 (사)한국작가회의 부산지회, 즉 ‘부산작가회의’의 전신이 되었다.
부산작가회의는 그간 부산민예총 등 타 기관의 공간 일부를 빌려 오랜 시간 더부살이를 해오다 지난해 연말 동광동 인쇄 골목 쪽 비어있던 사무실을 임대받아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지역의 문학단체를 대표하는 부산작가회의의 독립적인 공간이 5·7문학협의회가 결성되고 무려 40년이 지난 시점에야 안착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단체의 공간 마련이 비용이나 예산이 비로소 확보되어 이루어졌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40년 전 중구 한복판에서 결성된 문학인의 뜻과 의지가 시간이 흘러 구성원이 확대되고 다양한 창작 세계를 펼쳐왔던 이력의 공간적 구심점이 다시 원도심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중구 일대는 작가 모인 작품 집필 공간
부산작가회의·소설가협회도 둥지 틀어
새 시대 이끄는 ‘원도심 창작 산실’ 기대
최근에는 부산소설가협회 사무실도 중앙동 부산우체국 뒤편 골목에 자리 잡은 건물에 들어서기도 했다. 인쇄소와 출판사가 즐비해 1980~1990년대 당시 문학인의 교류가 활발했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문화공간과 구성원 및 단체의 이전과 분산의 흐름에 따라 침체의 늪에 빠졌던 ‘원도심 문학’이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국이다. 아울러 그동안 숱한 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 구실을 했던 ‘양산박’이나 ‘강나루’ 등의 주점이 사라지면서 오갈 데 마땅치 않은 작가들이 각종 창작프로그램이나 북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장소가 확장됨에 따라 삼삼오오 이곳 중구 일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부산 중구, 특히 동광동과 중앙동 일대는 한국 근·현대사의 오욕과 영광을 아우르는 장소였다. 동광동은 1678년부터 1876년 부산포 개항까지 지금의 용두산 일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량왜관의 동관(東館)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동관’과 인근 ‘광복동’의 첫 글자를 따 지은 행정구역이다. 중앙동은 1900년대 초부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북항 매축공사에 따라 바다를 매립, 지금의 중앙대로와 충장로 일대가 새롭게 형성되면서 기존의 일부 지역에 편입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의 식민지 경영과 대륙 침탈을 위한 발판으로 건설한 1부두와 부산역 등의 육·해상 교통 플랫폼을 끼고 있어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과 문화가 유입된 곳이기도 하다.
한때 한국 패션 1번가로 명성이 높았던 광복동, 한국에서 가장 큰 어패류처리조합인 자갈치시장이 있는 남포동, 한국 최초로 조성된 공설시장인 부평깡통시장이 있는 부평동, 한국 최대 규모의 책방골목이 있는 보수동 등 이곳 중구는 부산에 한정되지 않고 한국 전체로 봐도 손색없는 근·현대사와 문화의 ‘성지(聖地)’ 중 하나이다. 여기에 부산항 북항을 끼고 있는 동광동과 중앙동 일대에 속속 둥지를 틀면서 자리를 잡고 있는 문학단체와 작가들이 가세해 바야흐로 부산 문학이 제2의 르네상스를 꿈꾸기 위한 기반과 여건이 얼추 마련되었다. 2017년경에는 다른 구(區)보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중구 일원에 터를 둔 문학인들의 조직인 부산중구문인협회가 조직되어 지난해 제1회 용두산문학상을 제정하여 한평생 중구민으로서 창작 활동을 했던 아동문학가 강기홍 선생을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함성이 1987년 6월의 항쟁으로 되살아나 광복동과 남포동 그리고 중앙동의 거리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랐던 땅이기도 하다. 비록 17세기 초량왜관 조성으로 근대적인 의미의 시가(市街)가 형성되었지만, 이후 세계사적인 격동과 전쟁 및 산업화·근대화를 지나면서 이 나라 산업과 문화의 조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곳이다.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을 중심으로 한 남항 일대와 임시수도기념관이 자리한 서구 부민동의 독특한 역사·문화적인 공간, 그리고 부산근현대역사관과 백산기념관을 품은 대청로를 가로지르면서 웅크리고 있는 형형색색의 글감들이 작가의 펜이 스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항 북항 일대에 오래전부터 작가들이 살면서 작품을 생산해 냈다. 삶의 터전으로서 주거 공간의 시간을 지나 지금은 ‘기획된’ 행위로써 작가들이 속속 모이는 공간의 시간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시간 속에서 운명처럼 글을 써야 했던 지난 세대의 작가정신을 망각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예술 형식과 내용을 불러내는 작업이 북항 일대에 번지기를 기대한다.
2025-03-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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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예술인 복지지원센터를 아시나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춘삼월이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기 시작하며 바깥 공기는 들숨으로 설렘이 스며들며, 날숨으로 지난했던 시간을 내보내는 희망의 계절이 온 것이다. 고모가 사준 책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 대학이라는 미지의 바다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생, 자연과 사람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간을 올해도 어김없이 맞이한다.
2025년의 봄은 전 국민을 법 전문가로 만들어 버렸다. 각종 미디어에는 평생 다시 볼까 싶을 수많은 재판 영상을 일상처럼 접한다. 매일 마주하는 미디어에 법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날이 없다. 조선시대 어른들은 인의예지(仁義禮智) 같은 덕목을 강조하며 법 없이 살라 했거늘, “야! 구속시켜”라는 말이 요즘의 단골 농담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예술인 복지 정책, 성과 요구 방식
예술 활동 증명 절차 통해야 지원
자격 미비해도 사회가 품어줘야
‘헌법 77조’는 전 국민이 알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미디어에 노출된다. 우리에게는 지난 10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내란으로 인한 불면증은 국민의 트라우마가 되면서 내란과 탄핵 그리고 앙시앙레짐(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의 절대왕정 체제를 가리키는 용어)의 시대를 반복해야만 하는 불안한 정국을 10년 사이에 두 번씩이나 맞이하며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시대를 하루하루 버텨간다.
그러고 보니 신학기에 법 관련 에피소드가 있었다. 모 대학 출강 시절이다. 지역에서는 제법 정문의 위용이 근엄한 학교였다. 정복과 모자를 쓴 정문 지킴이 분이 입차하는 차를 막아 신분 확인을 하던 시절이다. 학기 초는 출입증 발급이 안 된 상태라 구두로 확인한다. 하필 학과도 아니고 무슨 과목을 강의하러 왔냐길래 “표현기법”이라고 답하니 “법대는 오른쪽 끝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하시고는 경례를 멋지게 하시는 거다. 그날 첫 강의는 미술대 학생들에게 법을 가르쳐야 하나! 웃음을 머금으며 강의실로 갔던 기억이 있다.
서구의 역사에 비하면 60, 70년이 뒤쳐졌지만 우리나라도 2000년부터 시대의 요구에 따라 문화예술진흥법이 시행되고 2012년 11월 25일부터는 예술인 복지법이 함께 작동되고 있다.
예술인 복지법의 핵심은 예술인의 법적 지위 보장, 예술인 고용보험 및 사회보장제도 적용, 창작지원금 및 생활 안정 지원, 불공정 계약 및 노동권 보호이다.
부산문화재단에서 부산예술인 복지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혜택을 받는 예술인들은 매우 작은 수치일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 활동 증명이라는 절차를 득해야 하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심의를 거쳐 ‘예술인 활동 증명서’를 승인해 준다. 각종 지원을 받으려면 증명이 되어야 한다.
부산광역시 예술인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 제4조(증진계획의 수립·시행)에 의하면 ‘부산광역시장은 예술인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해마다 예술인복지증진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추진 상황을 시의회에 보고하여야 한다(2020년 개정)’고 명시되어 있다. 현재 부산예술인 복지지원센터는 독립된 조직이나 형태 없이 부산문화재단 내에 2~3명의 직원이 도맡아서 감당해 내고 있다. 독립된 센터 없이는 지역 예술가들과 가까이하기엔 한계가 있다. 시행 시점부터 변화 즉 발전이 없는 명분만 있는 상태이다. 지역 예술인들은 예술인 복지 제도 혹은 센터가 존재하는지 알고 있을까?
복지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외된 자, 즉 자격이 미비하더라도 사회가 그들을 품어주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예술가들의 소식은 남의 일이 아니다. 제도와 정책은 사각지대를 애써 외면한다. 모름지기 복지라는 보편적 지원의 시각에서 사회보험 강화 정책, 경력 단절, 산재보험 가입, 예술인 신문고 이용 등 다양한 특례, 미시 정책 개발을 바탕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의 복지 정책은 성과를 요구하는 지원 방식이다. 유형의 결과를 만들어야 하니 기초예술지원과 다를 바 없다.
부산에 세계적인 미술관과 예술공원이 생길 모양이다. 부산의 브랜드 가치와 시민들은 소위 고급문화를 누리는 삶으로 격상될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지역 예술가는 오늘도 예술복지의 사각에 놓여있고 예술과 삶의 경계에서 작두 타듯 하루하루를 버텨 낸다. 드러나지 않아도 본인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수행하는 예술가들, 화려한 건축물은 아니더라도 세계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부산에 터전을 잡고 지역문화를 위해 애쓰는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볼 조그마한 센터 하나 마련되면 좋겠다. 이런 상상을 하며 봄 댓바람에 몇 없을 학생들을 만나러 강의실로 간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얘들아, 성공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거라.”
2025-03-0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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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누가 소크라테스를 죽였나
기원전 399년 봄 아테네의 광장에서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렸다. 시민 2명이 소크라테스를 기소했는데, 혐의는 신에 대한 불경죄와 청년 세대의 정신적 부패 조장이다. 재판은 하루 만에 끝이 났고, 50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피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재판 과정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으나, 피고는 아무 죄가 없는데도 처형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 그에게 철학은 인생의 교훈이나 삶의 지혜를 탐구하는 연구가 아니라, 편견을 제거하고 사고를 깊게 하는 문답의 실천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혼란스럽거나 근거가 부족한 신념을 다소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의견, 판단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것의 토대를 깊숙이 파헤치는 지성적 활동을 철학이라고 생각하였다.
국민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주의’
비합리적 편견 등에 휘둘릴 수도
사유와 이성의 훈련 뒷받침 필요
당시 아테네 사회에는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며, 잘살려면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세속적 신념이 팽배해 있었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다른 가치관을 제시하는 것 대신,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에게 먼저 잘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체로 학생은 잘산다는 것은 즐거운 인생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는 즐겁게 살지만 쾌락에 빠져 건강을 잃은 사람의 사례를 들면서, 그런 삶도 잘사는 것이냐고 묻는다. 이제 학생은 이전의 의견을 발전시켜, 잘산다는 것은 절제하는 삶이라고 답한다. 다시 소크라테스는 절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학생은 제대로 절제하려면 무엇이 자신에 이롭거나 해로운지 알아야 한다고 답한다. 다시 문답은 이어진다. 이런 토론 방식을 문답법 또는 변증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소크라테스에게 철학 그 자체이다.
변증법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아테네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청년들은 자신의 사고가 얼마나 얕은지 깨닫고 더욱더 공부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되며 동시에 부모나 교사, 전통을 이전처럼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 아테네의 기성세대들은 소크라테스 때문에 청년들의 심성이 비뚤어졌다고 믿고 소크라테스를 미워하여 아테네에서 제거하려고 하였다. 불경죄란 국가가 믿는 신을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자세인데, 실제로는 전통이나 조상,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경멸하는 태도와 행동을 가리킨다. 소크라테스의 혐의 두 가지는 서로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아테네에서 불경죄로 처벌된 유명인은 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판을 받기 전에 도망쳤고, 알키아데스는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도주했으며, 프로타고라스는 사형 판결을 받았거나 추방되었다. 이런 판결은 모두 민주주의적 절차를 따랐다. 민회에서 추첨으로 선출된 배심원들이 투표하여 다수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민회는 에클레시아라고 부르는데,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전쟁을 선포하고, 장군을 선출하고, 민주주의를 해칠 위험이 있는 인물을 투표하여 추방한다. 민회는 18세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참여할 자격이 있었다.
민주적 절차가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유명한 사건은 아르기누사이 해전 직후에 벌어졌다. 기원전 406년 아테네 함대는 지금의 튀르키예 해안의 아르기누사이 제도 근방에서 스파르타 해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폭풍우 때문에 표류하는 25척의 전함을 구출하지 못했고, 익사한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아테네 민회는 장군 8명을 해임하고 소환하여 재판에 회부하였다. 2명은 도망하여, 6명이 재판을 받았다. 첫날 재판에서 장군들은 나쁜 기상 때문에 생존자를 구출할 수 없었다고 변론하였고, 이것이 민회에 모인 군중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 재판은 다음 날로 이어졌고,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이날 그 해전에서 구출되지 못하고 익사한 승무원들의 가족들이 재판이 열리는 민회에 참여했던 것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장군들에게 엄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정치가 칼릭세노스는 더 이상의 토론 없이 장군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투표하자고 제안했다. 몇몇 사람은 이 제안이 부당하다고 반대하였으나, 반대자들에게도 장군들이 받을 처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자 그들은 반대를 철회했다. 이날 재판을 진행하는 민회의 진행자는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충분한 토론 없이 투표하자는 제안에 반대하였으나 투표는 그대로 진행되어 장군 6명은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민주주의는 그리스 말로 데모크라티아인데, 국민 즉 데모스가 통치한다는 뜻이다. 국민은 편견 또는 질투 같은 감정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지성으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둘 다 민주주의이지만, 전자는 타락한 민주주의이고 후자가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도 아테네처럼 타락의 위기이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의 타락을 경험하였으며, 지성의 훈련을 통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확립하려고 하였다.
2025-0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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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봄, 돌봄, 공동체 그리고 건축
대전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하교하던 8살 초등생이 살해당했다. 피의자는 같은 학교 교사다. 가장 늦게 혼자 하교하는 아이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워킹맘들의 불안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마저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 된 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왕따, 집단 폭력 외에도 학생과 교사의 인권을 이야기하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다.
“교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우울증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마저 안전하지 않다”라고 하면서 특정 집단의 문제로 몰고 가는 건 위험하다. 오히려 교육 환경과 안전의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을 점검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특히, 한부모 가정이나 부모 모두 일을 하는 경우 아이들 돌봄은 가장 힘들고 또 중요한 문제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방과 후 여러 학원에 다니게 하면 경제적 부담은 더욱 증가한다. 저출생 문제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돌봄이다.
최근 대전에서 발생한 초등생 비극
지역과 연계한 학교 역할 고민 던져
아동·노인 돌봄 등 다양한 용도 가능
사회적 기여 확대 방안 검토할 시점
대전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은 맞벌이 혹은 한부모 가정뿐 아니라 노인, 장애인, 취약 계층에 대한 돌봄 체계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의 책임을 지역사회가 함께 나누고, 이를 위한 공간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교 시설과 유휴 공간을 지역사회와 연결하여 ‘공동체적 돌봄’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아이가 있으면 그 마을의 어른들은 아이의 양육 과정에 자연스럽게 함께 참여하곤 했다. 하굣길에서 마주치면 안부를 묻고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마을 잔치가 벌어진 것처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가 방과 후 집에 오지 않아 학교에 찾아가면 십중팔구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학교는 마을의 중심이자 커뮤니티 공간의 기능을 했다.
여전히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지만 인구 소멸, 저출생과 함께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교 후 방치되는 넓은 공간을 아동 돌봄, 노인 돌봄, 장애인 돌봄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한다면 교육 환경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와의 유기적 관계도 구축할 수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 요시카와시의 미나미소학교는 지역의 공공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주민센터, 노인주간보호센터, 육아지원센터, 어린이 보육시설의 기능을 하나로 묶은 복합화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이 학교는 동선 분리와 운영 시간 조정을 통해 학생과 지역 주민이 공간을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주민들이 사용하는 시설은 1층 동쪽에, 학생들의 특별 교실은 서쪽에 배치해 동선을 명확히 구분했다. 또한, 시설별 운영 시간을 조정하여 학교는 평일 오전 8시에서 오후 5시, 주민센터는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 등으로 운영된다. 프랑스의 에코 스쿨(Eco-School) 모델은 학교를 지역 친환경 커뮤니티 센터로 전환해 활용하는 방식이며, 핀란드에서는 민간단체인 ‘만네르하임’이라는 아동복지연맹과 학교가 협력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돌봄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노인들은 가족에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생활했지만, 현재 노년층은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 ‘신중년’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정되고 있다. 이들은 독립적인 생활을 원하면서도, 사회적 교류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한다. 일본의 코다마 프로젝트는 시니어와 아동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시니어에게는 돌봄 교사의 역할을 부여하여 지역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데 일조했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서도 ‘돌봄’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학령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평생교육을 확장해야 하는 이 시점에 학교 시설은 학교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지역사회의 거점 공간이자 가장 안전한 복합 공간으로 조성되도록 우선하여 고려돼야 한다.
앞서 밝혔듯이 대전 초등학생의 비극적인 사건에서 피의자는 가장 늦게 하교하는 아이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 대상은 특정한 아이가 아니라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공공의 눈이 있었다면 함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제는 돌봄을 위한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공동체의 역할을 확장할 때다.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 튼다는 우수(雨水)가 지났는데도 한파는 여전하다. 이러저러한 사건, 사고로 마음까지 추운 시절, 돌봄이 우리 사회에 봄기운을 몰고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5-02-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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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기초예술은 미래 먹거리다
최근 중국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인 ‘딥시크’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놀랐다. 딥시크가 보여준 놀라운 효율성은 곧바로 세계적인 반도체와 전력 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관련 기술들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한 경쟁에 들어간 기술 혁신의 속도는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언제나 그것을 만든 사람이 있다. 우리가 자신 있게 다른 나라와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산업 분야는 무엇인가? 바로 K문화라 불리는 문화산업이 그중 하나다. 우리는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다”라고 한 ‘그 힘’을 가지고 있다.
주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쏟아져 나오는 우승이나 상위 입상 소식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9일,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16살의 발레리노 박윤재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공연예술에서 음악 분야를 넘어 무용 분야에까지 나타난 성과들은 단순히 개인적 능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가진 문화적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것이다.
문화로 세계에 우뚝 서는 일은 개인의 열정이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교육, 특히 기초 예술교육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기초가 튼튼해야 오래 유지되고 큰 업적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문화와 예술은 단순한 미적 즐거움이나 개인적 풍요로움만이 아니라 창의성이나 사고력을 함양하는 중요한 자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같이 누리는 힘은 사회적 소통과 연대를 만들어내어 우리 사회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고 풍요롭게 하는 자산이 된다. 당연히 예술을 즐기고, 공유하며, 거기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제27조는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적 삶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와 예술을 즐기며 과학적 진보의 혜택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회권 규약’ 또는 ‘A 규약’이라고 불리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제15조에서도 ‘모든 사람은 문화적 삶에 참여할 권리, 과학과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릴 권리, 자신의 문화적·창조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든 개인이 예술을 즐기고 창작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껏 예술을 누릴 권리만 강조한 것 같다. 이제는 예술의 창작에 직접 참여할 권리를 말할 때가 되었다. 배우고 싶다면 누구나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술교육이 더 이상 부모의 경제력이나 지역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는 누구나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국의 클래식 음악교육은 개인의 성장 환경에 따라 기회나 질적 수준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도 높은 교육비와 악기 구입비 때문일 것이다. 지금 부산이 준비하고 있는 오페라하우스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오페라하우스 설립이 단순한 건물 짓기만 되어서는 안 된다. 오페라와 관련된 다양한 공연예술 교육을 누구나 쉽게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예술이라는 추상적이고 ‘불안정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모든 기초학문이 그렇듯이 기초예술도 아주 큰 명성을 얻기 전에는 부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기초학문 위에서 응용학문이 발달하듯이, 기초예술이라는 바탕에서 소위 ‘돈이 되는’ 일자리가 생기는 법이다. 국가가 기초학문을 지원하는 것처럼 기초예술도 지원해야 한다. 이런 지원에는 기초예술을 배우기 위한 시스템과 그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미래 대책까지 포함해야 한다. 오페라하우스가 제작극장이 되어야 하는 올바른 이유다.
오페라하우스가 장소 임대업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제작극장이 된다면 이런 것을 한꺼번에 해낼 수 있다. 공공극장의 본연은 단순히 공연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예술 창작과 관련된 여러 직업군이 함께 일하는 복합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술극장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익을 창출하는 공간이 될 수 없다. 세계 각지에 있는 어느 오페라하우스도 정부나 민간 지원 없이 유지되는 곳은 없다. 공공극장은 예술가의 일터이자 기초예술 교육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경쟁력을 가진 문화도시로 가는 첩경이다. 우리나라 삼성이 오랫동안 지원했던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미국 마스터카드나 영국 데톨이 메이저 스폰서가 되는 이유도 그 장소가 일자리이자 교육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제작과 교육이 함께 있는 예술 환경을 부산이 먼저 만들자.
2025-02-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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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딥시크 쇼크’와 AI 인재 육성
‘파란 고래’가 일으킨 파도에 전 세계가 출렁이고 있다. 이 파란 고래는 중국에서 왔고 나이는 두 살, 이름은 ‘딥시크(DeepSeek)’다.
창립 2년이 채 안 된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저사양의 값싼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반도체를 사용하여 ‘챗 GPT o1’과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가진 생성형 인공지능을 개발해 선보였다. 딥시크가 밝힌 개발 비용은 오픈AI GPT 개발 비용의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굳이 고사양의 비싼 GPU와 반도체를 쓰지 않고도 성능 좋은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타나자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GPU 생산 업체인 엔비디아의 주가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6000억 달러, 한화로 약 840조 원이 증발했다. 이뿐 아니라 전 세계 인공지능, 반도체 관련 주가가 요동쳤다.
전 세계 충격 준 중국 인공지능 모델
개발자, 자체 육성한 국내파 청년들
핵심 인재 떠나는 우리 현실과 대비
관심이 집중되면서 딥시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가령 딥시크 개발에 고성능 AI 반도체를 사용했을 것이며, 따라서 발표보다 훨씬 더 많은 개발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는 의혹, 또 개발 과정에서 오픈AI의 기술을 훔쳤다는 의혹, 딥시크는 중국 정부의 검열을 받기 때문에 특정 문제에 대한 답이 제한적이라는 지적, 딥시크 사용 시 개인정보를 비롯한 민감한 데이터가 중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비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지적과 비판을 일부 수용하고, 딥시크의 발표가 어느 정도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딥시크의 등장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오픈AI의 챗 GPT가 비공개 폐쇄형 모델인 반면 딥시크는 오픈소스로 개방되었다. 소스가 모두에게 개방됨으로써 누구나 손쉽게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고, 경쟁을 통해 더욱 혁신적인 발전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딥시크는 고성능 GPU와 반도체를 더 많이 투입할수록 인공지능 성능이 더 좋아진다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마저 깨트렸다.
살펴본 바와 같이 딥시크는 폐쇄에서 개방, 고비용에서 저비용으로 인공지능 모델 개발 방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막대한 자본을 가진 몇몇 소수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한 인공지능 기술과 시장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됐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건전한 경쟁과 혁신이 이뤄지고 그 결과 인류 모두가 낮은 비용으로 고성능 인공지능 기술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딥시크의 등장은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인 마크 앤드리슨의 말처럼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에 비견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딥시크 쇼크에서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딥시크가 중국 토종 국내파 청년들을 중심으로 개발됐다는 점이다. 창업자 량원펑(40)은 중국 저장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였고, 딥시크 핵심 개발자로 알려진 뤄푸리(30) 역시 베이징대에서 컴퓨터언어학을 공부한 순수 국내파다. 이외 대부분의 딥시크 개발자 역시 국내파로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 청년들이라고 소개됐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세우고 국내 AI 인재 육성에 힘을 써 왔는데, 이게 딥시크라는 결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반해 인공지능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참담하다.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떠나고 있으며,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 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은 AI 인재 순유출 국가로 분류된다. 해외 인재가 우리나라를 찾기는커녕 국내에서 어렵게 육성한 인재가 되레 해외로 떠나는 실정인 것이다.
지금은 AI가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와 나라 경쟁력까지 좌우하는 시대다. AI 시대에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해 우수한 AI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정부는 각 부처의 인재 정책을 통합해 장기적 관점에서 생애 주기별 AI 인재 육성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AI 인재 육성 정책은 학부와 대학원 과정 지원에 집중되어 있는데, 초중고 AI 인재 발굴과 육성, AI 석학 연구자 및 교수들의 정년 연장 등으로 지원 대상을 넓힐 필요가 있다. 또한 뛰어난 신진 연구자에게는 병역 대체나 면제, 출산 및 육아기 자율 근무와 같은 혜택을 주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생애주기에 따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 마련하고 성과에 따른 획기적 보상 체계를 구축해야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자생적 AI 연구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딥시크 쇼크는 위기이자 기회다. 지금이 바로 파격적인 AI 인재 육성 대책을 마련하여 인공지능 3대 강국으로 도약할 골든 타임이다.
2025-02-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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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글쓰기의 악몽
지난 연말부터 설날을 지난 지금까지 한국에서 벌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사태를 생각하면,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더욱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때도 아마 없을 것 같다. 2017년 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국정농단의 전모가 드러날 때도 우리는 눈과 귀를 의심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근래 1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 정국의 주인공이 돼 TV 화면에 생생하게 중계되는 ‘비극 아닌 비극’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통령 탄핵 사건을 두고 연말부터 연일 탄핵 찬반 집회가 도심 한복판에서 꽁꽁 언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대통령이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부쩍 “반국가 세력” 운운하면서 그간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국민의 이념 정서와 감정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할 당시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급박하게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나 또한 대통령의 경직된 사고를 걱정하면서도 역사 교과서에서나 존재한다고 믿었던 ‘비상계엄’이 2024년에 선포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대통령의 지난 발언들을 비롯해 대통령 고교 동문인 몇몇 국무위원과 국방부 예하 수장들의 인선과 승진을 생각하면 이제야 뭔가 아귀가 맞춰지는 듯하다.
물론 이런 ‘복기(復棋)’에서 끄집어낸 정황과 속내를 꿰맞춰 본 사람들이 많을 줄로 안다. 여기에 지난 1월 19일 폭도들의 법원 침탈, 계속된 선거관리위원회 부정선거 의혹 제기, 극우 유튜버들의 지속적인 ‘가짜뉴스’ 선동이 국민의 눈과 귀를 혼몽하게 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는, ‘새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난해에다 여분의 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법률 체계가 탄핵 심판 과정에서 교묘하게 적용되어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의 과정뿐만 아니라 심지어 계엄령 선포 직후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이닥친 계엄군의 작전마저도 대통령의 ‘통치행위’란 이름으로 하등 위법일 리 만무하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에서 봇물 되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은 단순하고 명백하지만 그 사실을 들여다보는 눈과 인식이 다양해진 점에서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대통령의 주장대로 고도의 통치행위였든, 자신에게 심각한 파국을 안겨다 줄 것이 분명한 국회 특검법 상정을 무마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목숨을 건 무리수였든, 지금의 ‘대한민국호’는 분명 안개로 가득한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 있다. 차기 대선을 꿈꾸는 예비후보들도 자신의 속셈을 위장한 채 당분간 눈에 보이지 않는 선거 전략을 기획할 것이다. 언론 보도에서 탄핵 관련 단독기사와 속보가 끊이지 않는 이때, 글쓰기가 업인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글은 말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당연한 것이, 말은 수시로 할 수 있지만 글은 곰곰이 생각한 뒤에라야 나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문장이나 문맥 또한 일관성이 있고 호응에 맞아야 함은 물론이요, 글에 내비친 글쓴이 견해의 진실성 여부와 관계 없이 그 생각의 앞뒤가 명쾌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사람이 말로써 드러내지 않는 평소 자신의 철학과 소신, 그리고 세계관을 은연중에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된다. 어떤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든 글쓰기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가 없다. 사람은 글을 쓸 때 가장 진솔하고 정직한 상태로 돌아간다. 글은 거짓을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거짓이나 현혹의 수단으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의도를 숨길 수 없기에 글은 거짓을 모른다.
글이 새처럼 광활한 하늘을 휘젓고 다니면서 인간의 무한한 상상과 크레바스(빙하 속 깊고 거대한 틈)와도 같은 심연의 사고를 확장할 때, 인간 문화와 정신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건 아니다. 요즘처럼 ‘말하기’와 ‘듣기’로써 세상을 함부로 재단하고 확신하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일수록 글이 지닌 ‘오묘한’ 가치를 되짚는 일이 잦아졌다.
1·19 ‘법원 찬탈’을 감행했던 젊은이 대다수가 자신의 그런 행위를 초래하게 한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바로 ‘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들었던 말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종의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역설을 깨닫게 한다. 그런 말을 엄선해서 글로 옮겨야 하는 나로서는 새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글쓰기의 악몽’을 예감한다. 악몽 같은 현실은 시간이 지나면 어떤 형식으로든 수습이 되지만, 한 번 휘갈긴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내가 점점 드러나니 말이다. 그나저나 또다시 을사년을 맞이한 심정이 괜한 기우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5-01-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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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사랑과 이념의 갈등
대만 영화감독 이안의 2007년 작품 ‘색, 계’가 올해 1월 한국에서 재개봉했다. 영화는 전시 상하이와 홍콩을 배경으로 인간 심리를 깊이 탐구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 주인공의 노출 연기에만 관객의 관심이 집중되어 작품의 진정한 면목이 가려 버렸다. 영화의 핵심은 ‘색, 계’라는 제목에 잘 나타난다. ‘색(色)’은 사랑을 의미하는데, 개인적 행복을 대표한다. ‘계(戒)’는 주의하고 조심한다는 뜻이라기보다, 행동의 규범이나 사명을 가리킨다. 영화의 플롯은 바로 색과 계의 갈등, 즉 사랑과 이념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심리를 전개한다.
여자 주인공 왕가지는 홍콩의 대학생인데, 지금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배우 탕웨이가 연기한다. 왕가지가 사랑하는 남자는 광유민과 이묵성, 두 사람이다. 광유민은 대학 연극반의 선배이고, 이묵성은 일본이 중국에 세운 괴뢰 정부의 고위 관리이다. 이묵성이 홍콩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광유민이 매국노를 암살하자고 연극반 동료들에게 제안한다. 왕가지는 애국심 때문에서가 아니라 광유민에 대한 사랑 때문에 거사에 적극 참여한다. 광유민은 왕가지를 사업가의 부인(막 부인)으로 위장하고 이묵성 부부에게 접근하여 이묵성을 유혹하도록 한다. 이묵성은 왕가지의 청춘과 미모에 빠져들어 가지만, 암살의 결정적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상하이로 떠나버린다.
3년 후 왕가지는 상하이로 이주하여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녀를 광유민이 찾아온다. 그는 국민당 정보부의 비밀 요원이 되어 예전 연극반 친구들과 함께 이묵성의 암살을 계속 추진하고 있었다. 왕가지는 여전히 광유민을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희망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임무에 동참하기로 결심한다.
이제 개인의 진정한 자아와 그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 사이의 긴장이 영화의 주제로 부상한다. 왕가지의 진짜 정체는 광유민을 사랑하는 미혼의 젊은 대학생이지만, 막 부인으로 위장하여 이묵성을 사랑하는 척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왕가지와 이묵성의 관계가 지속하면서 정체성의 이중성이 왕가지를 심리적 미로로 몰아넣는다. 막 부인으로서 이묵성을 사랑하는 그녀의 연기는 단순한 겉표지가 아니라, 현실과 속임수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두 번째 피부가 된다. 그녀가 캐릭터에 오래 머물수록 그녀의 진정한 자아가 그녀의 역할 아래로 잠기게 된다. 이러한 이중성은 ‘역할 흡입’으로 알려진 심리적 현상을 반영한다.
역할 흡입은 개인의 정체성이 그가 수행하는 특정한 역할에 의해 지배되는 심리적 현상을 가리킨다. 개인의 ‘자기’ 개념은 그가 수행하는 역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원래 지녔던 역할의 잠재적 다양성이 감소되어 버린다. 특히 사회나 집단이 개인에게 특정 역할을 요구하고 개인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스스로 행동과 인간관계를 제한하게 된다.
왕가지는 자신이 실천하는 역할이 자신을 먹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광유민과 그의 상관에게 경고한다. 그런데도 국민당 정보부는 왕가지가 역할에 계속 충실하기를 요구한다. 왕가지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자신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절망적 항변으로 표출한다. 이묵성이 보석상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왕가지에게 선물할 때 그녀는 이묵성에게 도망하라고 말하며 암살의 음모를 알려준다. 이 순간 역할 흡입은 최고조에 달하여, 왕가지의 정체성은 정말로 이묵성을 사랑하는 진짜 연인이 되어버린다.
영화 ‘색, 계’의 심리적 긴장은 도덕적 모호성으로 인해 더욱 고조된다. 도덕적 모호성은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명확한 구별을 결여하는 상황, 결정, 성격 등을 지적한다. 이런 경우는 주로 윤리적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서 친구에 대한 의리와 사회에 대한 공정성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이 옳은지 결정하기가 어렵다. 왕가지의 상황도 그러하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려는 왕가지의 초기 결심은 이묵성에 대한 커지는 애정과 얽혀 심오한 감정적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종종 ‘인지 불협화’라는 용어로 묘사되는 이러한 심리 상태는 사랑과 의무라는 모순된 요구와 씨름하도록 그녀에게 강요한다.
영화 ‘색, 계’는 단순한 멜로물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심리적 역작이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명과 개인적 행복 추구의 교차에 휘말린 인간의 잊을 수 없는 초상화를 보여준다. 이안 감독은 왕가지, 이묵성, 광유민의 이야기를 인간 정신의 취약성에 대한 인상적 연구로 만들고 있다.
2025-01-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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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AI시대, 주거 정의를 묻다
“나는 당신의 친구예요.” 미소 지으며 손을 내민다. 키는 155cm, 긴 머리에 상냥한 그는 지난 10일 막을 내린 ‘CES 2025’에서 미국 로봇 기업 리얼보틱스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리아(Aria)’다.
‘CES 2025’는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박람회다. 올해의 주제는 ‘Connect. Solve. Discover. DIVE IN.’이다. ‘연결하고, 해결하며, 발견하고, 몰입하자’는 의미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AI(인공지능)다. AI는 가전, 모빌리티, 헬스케어 등 일상생활뿐 아니라 스마트 도시 건설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는데, 특히 올해는 AI를 더한 ‘로봇’이 시장을 제패할 신사업으로 본격 소개됐다.
아리아는 사람과 영화나 TV를 함께 보고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은 15만 달러(약 2억 2000만 원).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얼굴로도 제작이 가능하단다. ‘오징어 게임’ 시즌 2에서 책정된 참가자 1명의 몸값보다 더 비싼 셈이다.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개봉한 영화 ‘세입자’는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시작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우상, 대만금마장영화제 등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영화로 단편소설 ‘천장세’가 원작이다. 여기에 듣도 보도 못 한 천장세가 나온다. 주인공 신동이 사는 도시는 빈부격차가 극심해서 소수의 부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월세로 살고 있다. 월세 세입자는 자신이 사는 곳의 일부를 또 월세로 줄 수 있는데 이를 월월세라고 한다. 천장세는 청년의 주거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집을 리모델링할 때 천장에 세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도시에서 지원해 주는 가상의 제도다. 월월세를 통해 거실이나 화장실의 일부조차 임대받기 어려워 내몰린 사람이 최종 선택하는 공간이 천장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극단화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공간이 반지하였다면, ‘세입자’에서는 천장이다. 도시의 주거공간이 재산 정도의 척도가 되고 사회적 신분과 계급을 나누는 현상이 되었다. 이미 본질이 무너진 집은 부동산 논리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올해 부동산 시장에서 주시해야 할 트렌드의 하나는 ‘월세 주택’이라고 한다. 그동안 조금씩 불거졌던 전세 사기가 지난해 크게 터지면서 전세 대신 월세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전세 제도는 그동안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에게는 사금융의 역할을, 세입자에게는 돈을 더 모으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오르는 집값에 맞춰 함께 오르는 전세는 감당이 어렵고,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제도 자체에 대한 인식도 악화되어 점차 월세로 바뀌는 추세다.
소득이 낮다면 더더욱 전세금을 종잣돈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기보다는 월세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집이 여러 채인 사람은 임대 사업자로 월세 수입을 늘리려 할 거다. 벌써 글로벌 기관 투자자는 우리나라 주택 월세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고 하니 소득과 자산의 격차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면 상상을 초월한 공간 활용 방식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영화 ‘세입자’가 그저 기이한 상상력을 동원한 영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시는 계속 발전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리아가 등장한 ‘CES 2025’가 개막하기 하루 전날,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아키오 회장은 ‘우븐 시티’의 1단계 건축을 마무리하고 올해 가을 공식 론칭을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우븐 시티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실생활로 체험할 수 있는 스마트 도시다. 부산은 2005년부터 스마트 도시 사업을 진행해 2018년 국가시범도시로 에코델타시티가 선정됐다. 2021년 총 54가구가 스마트 빌리지에 입주했다. 그들의 거주 경험은 연구 자료로 활용하기에 현재 밖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렇게 얻어진 기술의 성과가 기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특정 계층만을 위한 ‘럭셔리 도시’로 변질된다면,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빈곤층은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기술적 혜택은커녕 기본적인 주거권조차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 권리를 보장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스마트 도시 설계 단계부터 빈곤층의 삶의 질을 고려한 정책과 시스템이 포함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도시란 무엇인지, 또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하자.
2025-0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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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상징과 그림으로 전망해 보는 뱀의 해
2025년은 뱀의 해다. 동서고금 뱀만큼 천의 얼굴을 가진 상징이 또 있을까, 뱀은 전 세계 신화, 전설, 종교, 예술, 삶 속에서 부정과 긍정의 상반된 다의적 상징들로 나타난다. 많은 동식물들이 여러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뱀처럼 양면적 의미를 나타내는 존재는 찾기 어렵다.
뱀은 독을 가지고 있어 악, 파괴, 죽음 등과 연관되는데, 특히 성서에서는 유혹, 타락, 원죄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뱀은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했던 악과 교활함의 상징이다. 또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얼굴로 그것을 본 사람을 공포에 빠트려 돌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을 가진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다름 아닌 뱀이다.
다른 한편 뱀은 많은 알을 낳아 자손을 번식시키고 대지 가까이 살기 때문에 풍요와 다산, 생명의 힘, 창조 등을 나타낸다. 뱀은 수태와 연관된 남성적 생산 능력의 상징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신들과 임신한 여성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반복적 탈피 과정의 경이로움 때문에 뱀은 변화와 갱신, 부활과 치유, 영적·육체적 재생, 불사영생과 같은 신비로운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설화나 민화에서 뱀은 인간에게 약초가 있는 곳을 알려 주며 은혜를 갚는 덕 있는 동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집에 있는 뱀은 복을 가져오며 뱀 가죽을 지니고 있으면 부를 얻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뱀은 수호신 이미지도 있다. 〈삼국유사〉에서 김수로왕의 보물을 훔치려는 도적을 물리친 것도 30척이나 되는 뱀이었다.
한국 근대 화단에 뱀 그림으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이가 있다. 1951년 화폭을 뱀으로 가득 채운 ‘생태’라는 작품을 그린 27살 때의 천경자 화가다. 산수나 인물을 주로 그렸던 한국화 화단에 뱀이라는 소재는 특이하고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여성 화가가 뱀을 그렸다는 사실은 한층 더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의 격동기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젊은 여성 화가가 그려 놓은 뱀 떼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수십 마리 뱀들이 얽혀 꿈틀댄다. 투명하고 화사한 색채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바라보고 있으면 징그럽거나 무섭기보다 오히려 청명하고 순수하게 느껴진다. 뱀들을 과감하게 배치한 화면 구성력과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그러한 치밀한 정확성은 광주역 앞 뱀 집에서 수십 마리 뱀을 유리 상자 속에 넣고 한 달간 직접 관찰하며 스케치 작업을 진행한 끝에 나온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25일 만에 완성했는데 애초에 뱀은 33마리였으나 고통과 상처를 남기고 떠난 35살의 뱀띠 연인 생각이 나 둘을 더해 35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생태’는 또한 전쟁 피난지였던 부산과 인연이 깊다. 이 작품은 1952년 부산 칠성다방에서 열렸던 대한미협전에 출품되었지만 자극적이고 괴기스럽다는 이유로 전시 목록에서 제외되었다가 이후 부산 국제구락부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였다. 전시 개최 전부터 칠성다방 주방 한편에 놓여 있던 그림을 본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마침내 화단의 큰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당시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밤 9시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천 작가는 이를 계기로 명성을 얻어 2년 후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뱀은 천경자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다. 어쩌면 작가는 인생 고비에서 수호신처럼 그것을 그렸던 것 같기도 하다. 천경자 화가는 뱀을 그림으로써 처절한 삶의 현실에 대한 저항을 형상화하며 생명과 삶의 의지를 피력했다. 고통과 슬픔, 분노 등의 내면 감정을 표현한 뱀을 그림으로써 작가는 여동생의 죽음, 실패한 사랑, 경제적 어려움 등과 같은 삶의 역경을 넘어섰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날 꿈틀거리는 뱀이 주었던 강렬한 느낌, 그 원초적 생명력을 통해 작가는 현실로부터의 탈피를 꿈꾸었던 건 아닐까.
뱀은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성장하는 동물로서 현명함, 지혜를 갖춘 영물로 언급된다. 머리와 꼬리를 맞대고 이어지는 원 모양의 뱀은 오래전 신화 속에서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영원 회귀를 뜻하기도 한다. 생과 사의 근원적 비밀을 간직한 뱀이라는 소재는 천경자에게 상상력의 원천이었으며, 참혹한 현실의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영감과 힘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뱀의 해인 2025년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진통과 시련 속에서 시작되었다. 올 한 해 시간이 갈수록 생명, 치유, 지혜와 같은 뱀의 긍정적인 상징들이 회복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2025-01-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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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2025년 새해, 부산을 여는 새로운 물결
을씨년스럽게 새해가 밝았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졌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도 그 이름이 무색해졌다. 전국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해양수도는 ‘노인과 바다’뿐이라는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높은 실업률에 더하여 2022년에는 장노년 인구가 153만 2000명으로 전체 시민의 46.5%가 되었다. 65세 이상 노년 인구는 70만 2000명으로 전체의 21.3%를 차지했다. 부산 총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가운데 2035년 노인 인구는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환율은 급등하고 주가지수는 급락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한국은행 부산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부산의 자영업자 대출 비율과 고령층 부채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소비심리 위축이 상당히 심각해 전반적인 지출 항목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문화 소비율이 가장 크게 하락해 시민들의 문화적 활력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부산 음악계는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역에 처음으로 생기는 클래식 전용극장인 ‘낙동아트센터’와 ‘부산콘서트홀’이 개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부산콘서트홀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술 혁신의 상징으로 통하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다. 종교 시설을 제외하면 비수도권 지역 공연장에서는 최초로 도입되는 악기로, 세종문화회관(1978년), 롯데콘서트홀(2016년), 부천아트센터(2023년)에 이어 국내 네 번째이다.
이는 단순한 악기 설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884년 부산항을 통해 처음 들어왔던 피아노처럼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줄 것이다. 부산은 물론 대한민국 음악사를 통틀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부산이 과거의 문화유산을 이어 미래지향적인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소중한 전환점을 만들기 바란다.
부산콘서트홀 개관 역시 공연시설 확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역 예술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혁신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먼저 수도권 중심의 공연 인프라 불균형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영화도시’라는 이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로벌 복합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이번 개관을 통해 부산은 국내외 문화 예술계에서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며, 문화적 다양성을 지닌 글로벌 도시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연장은 지역 사회와 긴밀히 연결되고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아 문화산업의 단단한 기초가 될 수 있다.
물론 공연장 건립만으로 완전한 문화적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연장은 시민들에게 더 많은 문화적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모두가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포용적인 사회적 가치를 지닌 장소로 변해야 한다. 특권층의 향유물이라 여겨지던 클래식 음악도 제한된 인식의 경계를 넘어 모든 음악 문화의 기초로 이해되어야 한다. 클래식 공연장이 고급문화의 소비 장소가 아닌 공동체 결속과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문화 인프라가 도시 경쟁력으로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공연장은 예술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연결하는 다리다. 단지 예술을 소비하는 장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삶의 조화를 위한 영감을 주고 도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공공의 장소다. 새롭게 개관하는 부산콘서트홀이 눈에 보이는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든 시민에게 위안과 영감을 주는 열린 시설로 거듭나 또 다른 문화적,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5년은 낭만주의 시대의 다재다능한 거장 카미유 생상스가 태어난 지 190주년이 되는 해다. 새로 지은 부산콘서트홀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그의 ‘오르간 교향곡’을 실황으로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여느 비운의 천재 음악가들과 달리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며 86세까지 장수했다. 부산의 음악 문화도 오래도록 풍성함이 유지되면 좋겠다. 아울러 지역에서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는 낙동아트센터도 수준 높은 예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두 개의 전용극장이 부산 지역 공연예술을 끌고 가는 쌍두마차가 되기를 바란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지만 부산이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가는 기틀을 마련하고 도약하는 원년이 되면 좋겠다. 내 고향 부산이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오래도록 식지 않는 가마솥의 열기를 품게 만들자. 미래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희망차게 다가온다. 2025년 을사년 새해에는 모두가 평화롭기를 기원한다.
2025-01-0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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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2024년에 읽는 <1984>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더불어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히는 조지 오웰의 〈1984〉. 소설 〈1984〉는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에 출판되었지만 〈1984〉를 통해 던지는 오웰의 경고는 2024년을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의 배경인 오세아니아는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기구인 ‘당’은 가공의 인물 ‘빅 브라더’를 내세워 강력한 독재를 펼친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계와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당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우선 전파의 송·수신이 모두 가능한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을 곳곳에 설치해 당원들의 모든 사생활,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표정까지 철저하게 감시한다. 단순히 감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성욕까지 당에서 통제한다. 나아가 단어의 수를 줄인 신어를 만들어 사용하게 하는데 이를 통해 생각의 폭을 좁힌다. 당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당원들의 욕구와 사고까지 지배함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영속화하려고 한다.
비상계엄령 꺼낸 집권 세력의 행태
75년 전 〈1984〉의 경고와 흡사해
국민 대다수의 깨어있는 정신 중요
2024년 우리 국민들이 직접 증명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러한 당의 통제에 의문을 품는다. 즉 사람들의 의식과 욕구를 통제하면서까지 당이 권력을 가지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근원적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답한다. 유사 이래 권력을 찬탈한 이들은 국민에게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아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든 뒤 다시 권력을 돌려주겠다고 하였지만, 누구든 권력을 장악하면 포기하지 않았다고.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라고.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는 정부 정책에 대한 감시와 비판, 견제를 ‘반국가적’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치환하였다. 그리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총을 든 군인을 투입해 스스로 빅 브라더가 되려고 하였다.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이 속한 ‘당’은 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그 당은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을 위헌·위법하다고 말하면서도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과 관련해서는 ‘분열하면 당이 망한다’며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 그리고 첫 번째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를 포기하고 퇴장함으로써 탄핵안을 보이콧하였고, 다음 본회의에서는 당 소속 의원 108명 중 8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더 섬뜩한 것은 국민의 뜻에 따라 탄핵안에 찬성한 의원을 ‘이기주의자, 배신자, 세작, 쥐새끼’로 몰아세우며 색출하여 반란자를 징계·처벌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그 당에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 당이 보이는 전체주의적 발상과 행태는 흡사 〈1984〉를 연상케 한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성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주장을 뻔뻔하게 내세우고, 때로는 폭력적인 패악질까지 서슴지 않는다. 권력을 활용해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사라진 채 오로지 권력 획득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추악한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당의 행태도 그 면면을 살펴보면 그 당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비상계엄과 탄핵을 빌미로 권력을 빼앗을 궁리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 〈1984〉에는 당원 계급 아래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무산 계급이 존재한다. 이들은 가난하여 당장 하루 먹고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정치나 사회 구조에 관해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당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고귀한 희생정신과 사랑, 인간적 가치를 지니고 살아간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들이 무지에서 눈을 뜨고 행동에 옮길 때 비로소 당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84〉에서는 무산 계급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였지만 다행히 2024년의 대한민국 국민은 달랐다. 완전 무장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이 방송되자 국민들은 국회로 달려가 군인들을 막아섰다. 그 당이 탄핵안 투표를 거부하고 반대할 때 수십만, 수백만 명의 국민들은 거리에 운집해 한 목소리를 내었다.
국민들의 함성에 탄핵안은 가결되었지만 아직 〈1984〉는 끝나지 않았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를 돌아보자. 탄핵 촛불 집회 이후 국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기득권 세력의 구태의연한 정치는 반복되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따라서 국민들의 힘이 모인 이때,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와 같이 국민이 권력을 직접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득권 정치 세력에 위임된 권력을 국민이 원할 때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도록 정치 구조를 개선해야 비로소 〈1984〉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될 수 있다.
2024-12-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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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너를 기다리는 동안
부산 중구 동광동에 ‘강나루’라는 간판을 단 주점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작고하신 이상개(1941~2022) 시인 내외가 운영하던 식당이었지요. 주로 문화예술인들이 진을 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알 만한 분들은 아실 겁니다. 말수가 적은 시인은 그곳엘 드나드는 손님들과 자리를 옮겨가며 술잔을 기울이면서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시단의 원로였지만 일부러 자신을 내세우거나, 후배 문인들에게 핀잔을 준다거나 윽박지르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그의 의견에 동조하게 하는 숨겨진 힘을 지닌 어른이셨습니다. 그런 그의 성정이 한편으로 미적지근하다 해서 어떤 이들은 ‘우유부단 학파’의 우두머리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지요. 그는 한결같은 태도와 어조로 사람을 대했습니다. 모처럼 주점엘 들른 젊은 후배 시인에게는 예의 낮은 목소리로 “요새 별일 없제?” 묻곤 했습니다.
과묵한 말수와 함께 젖어 드는 그의 온화한 기품에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쏟아냈습니다. 그는 몇 마디 응수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일 뿐 굳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거나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서 삼삼오오 찾아오는 손님들은 그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문학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이 있습니다. 늘 보아오던 사람이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더러 언쟁을 높이면서도 결국엔 손을 맞잡고 화해하면서 술잔을 부딪칩니다. 불콰해진 얼굴마다 자신의 예술과 삶의 태도가 각인되어 있는 예술가들은 하루의 피로를 안방처럼 온기가 번지는 주점에 모여 녹이곤 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행복했던 한때처럼 느껴집니다. 정치나 경제 상황이 안 좋아도, 서리처럼 차가운 공기가 사회를 감돌아도, 우리는 자신이 견디고 지켜낸 하루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저마다 간직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경제적, 신분적 차등 의식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각자 일구고 있는 삶의 모양과 각도를 서로 존중하면서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하루하루는 견디기 벅차면서도 어쨌든 내일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한 시간의 경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는 중에 사랑을 갈구하고, 친절을 내보이고, 정직을 바라고, 밝은 사회를 꿈꿉니다.
어제 지나쳤던 골목과 사람을 오늘도 만납니다. ‘하루’는 이 크나큰 우주를 떠올리면 아무렇지도 않고 사소한 시간의 범주이지만, 하루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 한정된 일을 하거나 한정된 사람을 만납니다.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루를 쪼개어 마치 사나흘처럼 보내기도 합니다. 저 같은 보통 사람은 그저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도 벅차거나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중 나온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기지개를 켭니다. 여기에는 살아온 삶의 이력이 보여주는 호흡의 길이만큼만 차이가 날 뿐, 무의식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작동합니다. 이것이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이라는 사실을 별스럽게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세력이나 존재가 평온한 일상을 찢고 침투하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인간은 이성과 논리뿐만 아니라 위험을 인지하는 타고난 감각 또한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3일 밤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지만, 이내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에 들어간 국회의원들과 국회를 에워싸면서 반헌법적인 계엄에 반대했던 시민들의 힘으로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습니다. 그 뒤 전국 각지에 몰려든 시민들의 요구와 함성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보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 자신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친밀한 대화에 익숙하고 몸으로 느낍니다. 한국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이런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근거한 판단과 움직임으로 오늘을 이룩했습니다. 텅 빈 주점에 앉아 말없이 술잔을 비우던 시인, 하루를 보내고 또 다른 하루를 기다리며 지난 삶의 여정을 곱씹고 문학을 가늠했던 시인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다리고 꿈꿔 온 시간을 조용하게 갈망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어느 시인은 그러한 기다림을 두고 이렇게 읊조리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내가, 아니 우리가 질러가는 게 맞습니다.
2024-12-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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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철학의 위안’, 최악을 상상하기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책 읽기에는 겨울이 더 좋다. 겨울은 날씨가 추워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밤의 길이가 길고, 나뭇잎이 떨어진 정원의 적막함은 독서에 적합한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12월 중순부터는 새해를 계획하며 삶의 성찰이 일어나는 시기인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색적 저술을 찾게 된다. 그러나 전문적 철학은 너무 어려워 조금 읽다가 말아버리고, 대중적 저술은 너무 깊이가 얕거나 일방적 시각에 치우쳐 있다. 반면 알랭 드 보통은 철학과 심리학, 예술사를 섞는 독특한 방식으로 소설이나 에세이를 써서 독자의 이해를 도우면서도 더 깊은 사고를 자극한다. 대표적 저술은 1993년의 〈사랑의 에세이(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철학의 위안〉(2000), 〈불안〉(2004),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2012) 등인데, 오늘 소개할 책은 〈철학의 위안〉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위대한 철학자 6명의 지혜를 통하여 독자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제1장 ‘인기 없음의 위안’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활용하여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안내한다. 제2장 ‘가난의 위안’은 돈이 부족하면서도 만족하는 인생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는지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통해 설명한다. 제3장 ‘좌절의 위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하여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을지 스토아주의 철학자 세네카의 지혜를 통하여 인도한다. 제4장 ‘부적합성의 위안’은 몽테뉴의 통찰을 통해 비정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문제를 극복하도록 안내한다. 제5장 ‘실연의 위안’은 쇼펜하우어의 삶-의지 개념을 활용하여 연애 관계에서 거절당한 사람이 왜 가슴 아플 이유가 없는지를 설명한다. 제6장 ‘난관의 위안’은 니체의 사상을 도입하여 삶의 고통과 대결하는 자세를 안내한다.
최근 한국 사회는 격변을 경험하고 있다. 현대의 다수결 민주주의는 사실은 다수의 통치여서 다수의 국민과 소수의 국민은 늘 이익과 감정이 충돌한다. 선거나 탄핵과 같은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때, 다수의 승리자는 그들의 신념과 이익을 옹호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즐겁지만, 패배한 소수는 통치로부터 소외되어 좌절하고 그것이 불안과 분노를 일으킨다. 정치적 경쟁에는 승패가 반드시 따라오므로 어느 쪽이 이기든 다른 한편은 좌절의 시련과 싸워야 한다. 이런 시국에서는 제3장 좌절의 위안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프랑스의 화가 다비드는 1773년에 그린 ‘세네카의 죽음’에서 서기 65년 로마 황제 네로의 명령에 따라 자살하는 세네카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다. 세네카는 황제를 몰아내려는 반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화면의 중앙 왼편에 세네카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고, 의사는 세네카의 발목과 무릎 후면의 정맥을 절단한다. 그래도 피가 상처로부터 잘 나오지 않자 세네카는 왼손을 뻗어 의사에게 독약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다. 화면 중앙 오른쪽에는 아내 파울리나가 남편과 함께 죽기 위해 역시 칼로 정맥을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죽어가는 세네카와 아내의 표정은 억울함이나 슬픔, 고통을 넘어서 당당하다. 이런 흔들림 없는 정신의 덕성을 도야하는 것이 스토아 철학의 이상이다.
세네카는 이전에도 재앙을 겪었다. 서기 41년 공주와 간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코르시카섬으로 유배되어 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그런 좌절 속에서도 그는 평정의 자세를 유지하였다.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윤리 서한〉의 ‘편지 91’에서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앙을 맞이하면 충격이 훨씬 강렬한데, 그 예상하지 못함이 불운의 무게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실제로 일어날 것처럼 미리 그려봄으로써 다가올 재앙으로부터 해악을 제거할 수 있다.”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나쁜 상황을 미리 상상하는 훈련이 바로 스토아주의의 ‘최악의 예상(premeditatio malorum)’ 개념이다. 이것은 염세적 사고나 단순한 부정적 사고가 아니라, 다가올지도 모를 불운한 사건들을 미리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대책을 준비하는 기회를 일으키거나, 죽음이나 노화처럼 대책이 없는 문제에서는 당당하게 재앙을 맞이하게 하는 용기를 준다. 최악의 예상은 비관적 사고가 아니라 건설적인 부정적 사고인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철학의 위안〉에서 철학자들의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었으며 엄격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점은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그런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이 책은 전통 철학에서 실천적 지혜를 추출하여 현대의 관심에 응용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2024-12-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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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럭키비키!
1년 전 오늘(2023년 12월 6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산 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에는 국토부 장관과 부산시장을 비롯한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경제계에서도 삼성전자, SK, LG그룹, 한화그룹, HD현대, 한진그룹, 효성그룹 등 한국 재계의 회장 혹은 부회장과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그야말로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특별법 범정부 거버넌스’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올해 초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으로 1월 25일 발의됐다. 이 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로 폐기되고, 22대 국회 개원 이후 부산지역 국회의원 18명 전원이 공동으로 참여해 여야 협치 1호 법안으로 재발의됐다. 하지만 여야 정쟁으로 인해 입법 공청회도 열지 못한 상태에서 어쨌든 연내 통과를 목표로 사활을 걸고 있었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여파로 연내 처리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계엄 사태로 우선순위가 바뀌어 국회에서 지역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는 언제 가능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부산을 싱가포르나 중국 상하이 같은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으로, 제1조 목적을 보면 ‘이 법은 부산광역시를 물류, 금융 및 디지털·첨단산업 분야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허브도시로 조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기반 조성 및 특례 등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남부권 혁신거점 구축을 통한 대한민국 균형발전 및 국가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지역 개발을 넘어 국가적 의미를 지닌다. 부산 전역에 규제 혁신과 특례를 부여해 물류, 관광, 금융, 첨단 산업 등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국가 자원을 분산하고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부권이 국가경쟁력을 보완하는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을 기회다.
대한민국은 저출생에다 오랫동안 수도권 일극화로 인해 지방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단순히 부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다. 특히 가덕신공항 건설, 금융중심도시, 북항재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는 국제적 인재와 기업을 유치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전략적 경제 정책과 세제 혜택을 통해 금융, 물류, 첨단 산업의 글로벌 허브로 자리 잡았다. 경제 자유화 정책과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이 성공의 핵심이었고, 두바이는 자유무역지대를 통해 외국 기업에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혜택을 제공하며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로 발전했다. 중국은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개방 정책과 특혜를 부여, 글로벌 제조와 기술 허브로 성장시켰다. 이들 사례는 법적 지원과 정책적 요인이 지역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지금의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부산의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은 부산시장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부산시민 모두가 한목소리로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통과를 외치게 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전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이 하루라도 빨리 통과됐으면 좋겠지만, ‘럭키비키’라 생각하자. ‘럭키비키’의 핵심은 초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아이돌 그룹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에게서 유래한 말이다. 유명 빵집에서 빵을 사려고 줄을 섰다가 하필 자기 앞에서 빵이 떨어졌는데, 장원영은 실망하는 대신 “덕분에 갓 나온 따끈한 스콘을 살 수 있었다”며 “역시 난 럭키비키야”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럭키는 행운(Lucky), 비키는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Vicky)다. 그러니까 ‘럭키비키’는 ‘운 좋은 비키’다. 보통은 “왜 하필 내 앞에서 빵이 떨어졌냐”며 투덜거리며 돌아갈 상황이지만, 조금 기다린 덕에 갓 나온 빵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초긍정의 힘이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통과를 조금 더 기다린 덕에 부산시가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종합적인 방향 설정을 면밀히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자. 단순히 법적 틀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과 공공의 협력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때마침 11월 25일 우신구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가 부산시 제3대 총괄건축가로 위촉됐다. 우 교수는 부산 출생으로 부산의 대학 강단뿐 아니라 건축계에서 오랫동안 신뢰받아온 건축가라 더욱 기대가 크다. 지속가능성과 혁신, 공공성과 민간 협력을 바탕으로 도시 부산의 미래를 만드는 계획을 위해 총괄건축가 역할의 확대가 필요하다.
2024-12-05 [18:24]